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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세계의 미술관] 안도 다다오의 개성 돋보이는 랑겐 파운데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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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의 사각지대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랑겐 부부
드넓은 초원 위 좁고 긴 유리 박스 사이로 속살 드러낸 콘크리트 미술

조선일보

랑겐 파운데이션의 전경/사진=고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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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랑겐 파운데이션이 있다. 50년 동안 나토(NATO) 미사일 발사 기지였던 냉전 시대의 사각지대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은 컬렉터인 빅토르 마리안느 랑 겐 부부다. 홈브로이히 미술관 설립자인 뮐러가 랑겐 부부를 만나면서 노이스 문화 예술 단지 조성에 불을 지폈다.

이름 없는 시골에 불과했던 노이스는 일본 미술품 소장가로 알려진 컬렉터 랑겐 부부로 인해 점차 알려지게 됐다. 이후 노이스 시는 미술관 주변을 문화 도시로 개발했고, 예술가들에게는 싼값에 작업실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줌으로 자연스레 주변을 활성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랑겐 파운데이션을 찾아가는 도중 들판 양옆으로 벽돌로 지어진 소박한 갤러리와 스튜디오가 드문드문 보인다. 예술가의 작업실뿐만 주거 공간을 제공해주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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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겐 파운데이션의 전시장 내부 공간/사진=고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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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입구를 가로막은 긴 아치의 벽 뒤편에 조심스레 감추어진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보기 위해서 다가가니 야트막한 물의 정원이 먼저 반겼다. 유리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좁고 긴 공간의 콘크리트 건물은 수평선 위의 드넓은 들판과 파란 하늘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며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했다. 안도 다다오 건축 입구에 매번 등장하는 물의 정원이 알렉산더 칼더의 까만 조각과 함께 제일 먼저 반겨주었다.

◇ 안도 다다오의 건축 미학이 돋보여

2004년에 문을 연 랑겐 파운데이션은 두 개의 상자로 이루어진 독특한 건축이다. 길이 60미터에 이르는 길쭉하면서 나지막한 형태의 미술관은 각기 다른 물성을 지닌 두 개의 상자가 이중 구조로 설계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리 상자 사이로 속살을 드러낸 콘크리트는 너무나 매혹적이다. 철골빔의 적나라한 골격 사이로 들어온 구름과 하늘, 자연은 디자인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옆으로 뻗어나간 둥그런 형태의 인공 벽 구조물이 약간 거슬렸지만, 부드러운 유선형으로 인해 직사각형의 미술관 건물을 자연스럽게 자연 속으로 묻혀 보이게 애쓴 의도가 엿보였다.

미술관은 1300제곱미터의 면적에 총 3개의 전시 공간을 갖고 있었다. 유리 공간 안으로 들어서면 전시실과 조그마한 카페가 보인다. 유리 박스 속의 콘크리트 벽을 따라 끝도 없이 나 있는 길고 긴 회랑은 지하 전시장으로 가기 위한 하늘 길과 맞닿은 성소의 공간이었다. 좁은 회랑을 유유히 걷다가 어느새 전시 공간을 보려는 기대감으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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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겐 파운데이션의 전시장 내부 공간/사진=고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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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 내려가니 지하와 반지하를 이용한 커다란 전시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8미터 천장 높이의 2개의 지하 전시실은 현대 작가의 작품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0세기 인상파의 작품부터 젊은 세대 일본 작가의 작품들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전시장 내부는 일본 나오시마의 베네세 하우스 미술관을 재연한 듯해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컸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1994년에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을 본 후 10년 만에 이 미술관을 짓게 된다. 안도 다다오는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설계에서 처음 의도했던 생태적 친환경 미술관과는 거리가 먼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면서 자신이 과거에 추구했던 색깔을 확연히 드러냈다. 건축물에서는 냉전 시대를 기억하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읽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나지막하고 좁고 긴 유리 상자의 미술관은 하늘 길과 맞닿은 드넓은 초원을 더욱 아름답게 채색했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는 목가적인 시골에서 한 해를 마감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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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품보다 미술관을 더 좋아하는’ 사진작가 고영애. 그는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왔다.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은 작가 고영애가 15년간 지구 한 바퀴를 돌 듯 북미에서 남미로,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그리고 아시아로 옮겨가면서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매혹적인 현대미술관 60곳을 기록한 미술관 기행서다. 옛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테이트 모던부터 12개의 돛을 형상화한 최첨단 건축물인 루이비통 파운데이션까지, 책에 게재된 60곳 모두 건축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장소지만, 그중 하이라이트 20곳을 엄선해 소개한다.

[고영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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