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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文대통령 '일방통행 개헌', 국무회의서 40분만에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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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UAE서 원격 결재… 이의제기 국무위원 1명도 없어]

文대통령 입장문 "개헌으로 내겐 이익없다, 권한 내어놓을 뿐"

국무회의 10시8분 상정→48분 결론… '졸속개헌' 논란만 커져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중 전자 결재로 4년 중임제 등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발의했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 것은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5공화국 개헌안 이후 38년 만이다.

정부는 이날 오전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개헌안을 심의·의결했다. 이 총리는 모친상(母親喪) 중에 출근해 회의를 주재했다. 이 총리가 개헌안을 상정해 법제처장과 관련 부처 국무위원들의 개헌안 설명을 거쳐 별다른 토론 없이 최종 의결하는 데 40분이 걸렸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0~22일 사흘에 걸쳐 개헌안을 발표하고 질의에 응답한 시간(총 119분)의 3분의 1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헌법학계 일각에선 "졸속 개헌"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UAE 현지에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한 입장문에서 "개헌에 의해 저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며 "지방선거 때 동시 투표로 개헌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개헌 발의권을 행사한다"고 했다.

◇이 총리 상중 회의 주재

이날 국무회의는 전날 저녁 모친상을 당한 이낙연 총리가 주재했다. 이 총리는 검은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오전 10시 국무회의장에 입장했다. 이 총리는 모두 발언에서 굳은 표정으로 "대통령께서는 시대 요구를 구현하고 여야 공통 대국민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개헌안을 오늘 발의하고자 국무회의 심의에 부치셨다"고 했다. 상정된 개헌안은 조국 수석이 발표한 원안 그대로였다. 법제처 심사를 거쳐 의미를 명확히 한다는 취지로 세 군데 문구만 수정됐다. 원안대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비롯해 선거 연령 하향(18세), '수도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 '토지 공개념' 등이 담겼다.

오전 10시 8분쯤 이 총리가 개헌안을 상정했다. 이후 김외숙 법제처장이 제안 설명을 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차례로 나서 각자 소관 분야와 관련한 개헌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동안 국무위원들은 미리 받은 개헌안 자료를 뒤적였을 뿐 질문이나 이의 제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국무위원들의 이의가 없자 이 총리는 오전 10시 48분 "원안대로 처리하겠다"며 의결했다. 총리와 국무위원들이 현장에 설치된 컴퓨터 단말기로 서명(부서)했고, 해외 출장 중인 국무위원 4명은 현지에서 전자 결재하면서 관련 절차가 마무리됐다.

조선일보

서울서 개헌안 의결 - 이낙연 국무총리가 26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 총리는 모친상 중에 출근했다.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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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에 참석했던 조국 수석은 이후 곧바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개헌안과 관련해 얼마나 얘기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조 수석은 "(청와대) 대변인이 말할 것"이라고만 했다. 이날 국무회의는 다른 안건 처리 후 오전 11시 25분쯤 종료됐다. 회의 후 이 총리는 모친 빈소가 있는 삼성서울병원으로 향했고, 김외숙 처장은 취재진을 피해 퇴장했다.

◇문 대통령이 순방 중 전자 결재

UAE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현지 바라카 원전 1호기 완공식 참석 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정부 개헌안을 보고받은 뒤 전자 결재를 했다. 문 대통령은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오히려 대통령 권한을 국민과 지방, 국회에 내어놓을 뿐"이라며 "제게는 부담만 생길 뿐이지만 더 나은 헌법, 민주주의, 정치를 위한 것이어서 당당하게 개헌을 발의할 수 있다"고 했다. 야권과 헌법학계 일각에서 "대통령 임기를 늘리고 인사 권한도 줄어들지 않았다" "국회와 사법부의 권한이 오히려 줄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과는 다른 설명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국회를 비판하며 6월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 모든 후보들이 지방선거 동시 투표 개헌을 약속했지만 1년이 넘도록 국회의 개헌 발의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고 했다.

이후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김외숙 법제처장이 국회를 찾아 대통령 개헌안을 제출했다. 김 처장이 개헌안을 행정안전부로 넘겨 관보에 게재하면서 대통령 개헌안 발의·공고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번 개헌안은 작성에서 발의까지 여러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장과 조국 수석이 주도한 '일방통행식' 개헌 발의였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헌법학회 고문현 회장은 "조국 수석의 발표 취지가 국민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후 국무회의에서 의결할 때까지 원안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며 "국무회의를 요식행위로 만든 것은 국무위원들의 명백한 직무 유기"라고 했다.

[황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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