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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개헌안 전문가 진단] "오히려 대통령 권한 강화된 거꾸로 개헌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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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장영수<사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 데 대해 “문재인 정부가 헌법을 개정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국회 협상도 없이 이렇게 대충 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문 대통령의 개헌 발의는 ‘정부가 개헌할테니 국회는 나를 따르라’고 하는 식”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정부가 개헌을 하려면 개헌안을 공개하고 발의 전에 국회와 협상을 했어야 한다”며 “야당이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수정할 것은 수정하면서 합의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강행한 것은 의회 민주주의를 무시한 절차라는 것이다.

그는 문 대통령의 개헌안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는 청와대의 설명에 대해서도 오히려 대통령 권한을 강화시키는 ‘거꾸로 개헌’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 개헌안에는 대통령제에 대해 4년 연임제로 바꾸고, 총리의 역할을 규정한 헌법 제86조 2항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구절 가운데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장 교수는 “문 대통령 개헌안은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내용이 거의 없다”며 대통령 권한을 국무총리와 나누는 전제 조건이 없으면 오히려 대통령 권한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회의 총리선출제나 총리추천제와 같은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장 교수와의 일문일답.

-문 대통령이 오늘 개헌안을 발의했다. 절차상 문제는 없나?

“절차 자체는 위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전자결재에 대한 명문 규정은 없다.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에도 2013년 11월 5일 국무회의가 법무부가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심의·의결했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유럽 순방 중에 전자시스템을 통해 결재했다.

다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박 전 대통령의 전자결재를 위헌이라며 무효라고 주장했었다. 야당 입장에서는 ‘야당일 때는 전자결재가 무효라고 주장하더니 여당이 되니 전자결재로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나’고 지적할 수는 있다.”

-청와대가 개헌을 주도하는 양상인데, 야당에서는 ‘관제개헌’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대통령이 개헌 화두를 띄우는 것까지는 나쁘지 않다. 화두를 던졌다면 다음에는 국회와 협상을 해야 한다. 지금은 ‘내가 개헌안을 발의할테니까 국회는 나를 따르라’는 식이다. 협상부터 했어야 한다. 대통령이 개헌 발의안을 공개하고 발의 전에 국회와 협상해서 야당이 수용할 것은 하고 고칠 것은 고치고. 이런 식으로 합의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정부가 개헌 의지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대충 개헌안을 발의했겠나. 지금 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정한 개헌시점인 ‘6·13 지방선거와 동시 국민투표’는 가능하겠나?

“지난 대선 때 대선 후보들이 모두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자고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원칙이라고 본다. 다만 국민이 납득할만한 연기 사유가 있지지가 관건이다. 여야 이견이 있으니 개헌안 국회 합의에 대한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가 애초에 ‘그 날 아니면 안된다’는 식으로 말해선 안된다.”

-청와대는 이번 문 대통령 개헌안이 대통령 권한을 줄였다고 설명한다.

“대통령 권력 집중이 해소됐다는 설명 자체가 말이 안된다. 오히려 대통령 권한이 강화된 ‘거꾸로 개헌안’이다. 현행 5년 단임제의 단점은 조기에 레임덕이 오거나 임기 말에 대통령의 책임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4년 연임제가 5년 단임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일 수는 있다.

문제는 ‘4년 연임제냐, 중임제냐’가 아니다. 현행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권한을 총리와 나눠야 한다. 책임총리제같은 제도가 필요한데, 문 대통령 개헌안에는 이런 내용이 빠졌다. 여전히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고 마음대로 해임할 수 있는 구조다. 결국 이를 보완하려면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거나 추천을 할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

-경제민주화 조항 강화와 함께 토지공개념 명시와 같은 이러한 부분들이 지나친 '국가 개입’ 더 나가서는 사회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있다.

“토지공개념에 대해서 의아하고 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현행법상 토지공개념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개헌안을 발표하면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내지는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던 토지초과이득세와 택지소유상한제 등을 돌파하기 위해선 토지공개념 명문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헌재가 토지초과이득세와 택지소유상한제를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토지공개념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이런 제도들이 사유재산에 대한 지나친 제한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문화한다는 것은 사유재산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제한을 정당화시킬 위험이 있다. 이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

택지소유상한제는 대도시에서 200평 이상의 택지를 살 때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고, 토지초과이득세는 개발사업 등으로 인한 땅값 상승분의 50%를 세금으로 물리는 제도다. 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택지소유상한제는 위헌, 토지초과이득세는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조 수석은 “택지소유상한에 관한 법률은 위헌 판결을 받았고, 토지초과이득세법은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개발이익환수법은 끊임없이 위헌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사유재산에 대한 정부 개입이 아니라고 말한다.

“토지공개념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은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문화하겠는 문 대통령의 방침이다. 이는 사유재산에 대한 과도한 정부의 개입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결국 조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토지공개념을 폭 넓게 해석할 수 있다. 헌법에 명문화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 정부가 개헌안에 6·10 항쟁,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등을 명시했는데 어떻게 보시나.

“저는 반대한다. 애초에 역사적인 날을 헌법에 넣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정권이 바뀌면 뭐는 넣고 뭐는 깰 것이냐는 논란이 나올 것이다. 헌법전문에 3·1운동과 4·19혁명을 넣은 것은 어느정도 국민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6·10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을 넣으면 광주학생운동이나 마산봉기 등은 왜 빼냐는 시비가 나올 수 있다.”

- 검사 영장청구권 조항이 삭제됐다.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이후 경찰에도 영장청구권을 주는 방안도 가능하다. 다만 이것을 헌법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나. 법률적으로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데, 굳이 헌법에 두려고 한다.”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수정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헌법으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 많다.

“노동과 관련된 것도 결국 법률로서 정하면 된다. 헌법이 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결국 법률이 정하는 것에 따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종의 헌법 만능주의에 빠져서 헌법에서 뭐만 바뀌면 세상이 달라질 것처럼 착각한다.

또 근로라는 용어가 일제시대와 군사독재시절에 사용된 용어라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당초 근로란 용어를 쓰게 된 것은 제헌헌법(1948) 때다.”

※=편집자주

[송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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