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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푸드뱅크 20년… 여기선 사랑이 밥 먹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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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IMF금융 위기 직후 결식계층 지원 위해 설립

기업·개인이 기부한 식재료로 운영… 작년 기부액 첫 500억 돌파

21일 서울 광진구 중곡종합사회복지관 앞에 냉동 트럭 1대가 멈춰 섰다. 서울시 푸드뱅크와 이마트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희망마차'다. 거동이 불편한 김강순(90) 할머니는 사회복지사의 부축을 받아 필요한 음식을 골랐다. 할머니가 밀고 온 유모차에 라면과 간장, 고추장, 김이 하나둘씩 담겼다. 김 할머니는 "오늘 받은 식료품이면 5개월은 먹을 수 있다"면서 "천번 만번 감사해도 모자란다"고 했다.

복지관에 설치된 간이 진열대에는 희망마차가 배달한 간장, 케첩, 참치 통조림, 김이 진열됐다. 한 사람당 5품목씩 골라 담을 수 있다. 홀로 중학생 아들 2명을 키우는 장윤정(47)씨는 "푸드뱅크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복지관에서 먼저 연락을 줘서 찾게 됐다"면서 "한부모 가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조선일보

21일 서울 광진구 중곡종합사회복지관에서 푸드뱅크 행사를 찾아온 어르신이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있다. 서울시 푸드뱅크와 이마트가 운영하는 ‘희망마차’ 트럭이 식료품을 한가득 싣고 복지관을 찾았다. /서울푸드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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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과 생필품을 기부받아 어려운 이웃에 전달하는 서울시 푸드뱅크 사업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개인이나 단체가 기증한 식품을 결식아동이나 무의탁 노인, 노숙인에게 지원하는 푸드뱅크 운동은 1967년 미국에서 시작해 캐나다·프랑스·독일 등으로 확산했다. 국내에선 1998년 1월 외환위기 직후 한 끼가 절실한 이들을 돕기 위해 시작됐다. 서울, 부산, 대구, 과천에서 시범 사업으로 도입됐다.

서울시 푸드뱅크의 기부액은 2003년 4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535억원까지 늘었다. 작년 한 해에만도 31만9112가구가 푸드뱅크의 도움을 받았다. 뇌병변장애와 시각장애를 앓는 신모(12)군은 푸드뱅크의 지원으로 중학교 진학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신군 가족의 소득은 어머니의 기초생활수급비뿐이었다. 생필품 마련도 빠듯한 상황에서 진학을 준비할 심적 여유가 없었다. 신군 가족은 서울시 긴급위기가정으로 선정돼 1년간 쌀과 햄 등 식품과 이불, 세제 등 생필품을 지원받았다. 기초 생계가 해결되자 어머니 김씨도 심리적 안정을 찾고, 신군도 진학의 꿈을 이뤘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노모(52)씨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업 실패로 집을 팔고 찜질방과 고시원을 전전했다. 자녀 2명을 일용직과 아르바이트로 키워 내려니 하루하루가 막막했다. 노씨 가족은 푸드뱅크에서 4인 가족에 필요한 식품과 매월 10만~15만원 상당의 생활용품을 지원받았다. 노씨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을 때 나눔의 손길이 있어 희망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받았던 나눔을 돌려주기 위해 최근 푸드뱅크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년간 푸드뱅크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이웃의 따뜻한 손길 덕분이었다. 현재 푸드뱅크에는 소규모 점포와 단체, 기업 3381곳과 개인 559명이 기부하고 있다.

푸드마켓에서 기부 물품 포장과 정리를 돕는 자원봉사자도 빼놓을 수 없다. 양천구 푸드뱅크마켓에서 8년째 봉사활동을 하는 최봉수(60)씨는 청소 용역 업무를 마치고 매일 푸드마켓에 들러 2시간씩 봉사한다. 최씨는 "부모님 같은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어서 보람이 크다"고 했다.

푸드뱅크는 20년을 맞이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이다. 실직이나 질병, 사고로 갑작스러운 위기에 처한 가족을 지원하는 '긴급 위기가정 지원사업'을 확대한다. 좀 더 신선한 제품을 나누기 위해 전문 위생사를 채용해 기부 식품의 위생 관리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식품이나 생활용품을 서울시에 기부하려면 서울시 광역푸드뱅크센터(02-905-1377, s-foodbank.or.kr)로 연락하면 된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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