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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굴보쌈 먹고 소주 따는 일본인...한국인 취향저격 ‘깔끔 먹방’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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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유튜브 ‘고추와사비’

배우 다케다 히로미츠

특별한 대사나 극적인 에피소드는 없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이는 일본 아저씨가 혼밥 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고로상’이 나오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떠올릴 것이다. 땡! 배경은 한국이고, 주인공은 소주를 즐겨 마신다. 직업은 배우. 정답은 다케다 히로미츠(43)가 운영하는 유튜브 ‘고추와사비 채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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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고추와사비 채널'은 맛집 선정부터 영상 편집, 내레이션과 자막까지 다케다 히로미츠씨가 도맡는 1인 미디어다. 사진을 찍은 곳은 서울 마포구 은성순대국. 앞서 다른 순댓국 집에 방문했던 영상의 제목은 '국밥충이 돼버린 오사카 남자의 끝'이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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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는 11만7000명. 다케다씨가 한국의 노포들을 찾아 밥을 먹는 영상이 올라온다. 한 달 전 구독자 10만명을 돌파해 유튜브 본사에서 실버 버튼을 받았다. 가장 히트한 건 1년 전 올린 ‘굴보쌈’ 영상. 종로 3가 굴보쌈 골목을 방문한 이 영상은 63만6000회 시청했고 댓글 1695개가 달렸다. “음식 먹기 전에 소주로 뱃길을 열다니, 한식 먹을 줄 안다” “표현법이 달라서 신선하고 재밌다” “한국 사람보다 잘 먹어서 침이 더 나온다”….

외국인이 한식을 먹으며 엄지를 척 하고 드는 ‘국뽕’도 아니고, 영상으로나마 비싼 식당을 구경하는 ‘대리 경험’도 아니다. 많이 먹지도, 희한한 조합을 시도하지도 않는 일본인의 맛집 탐방에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도 열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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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고추와사비 채널'. /온라인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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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식도, 괴식도 없는 먹방

-구독자 10만명을 돌파했는데.

“하필 일본 도쿄에 있었어요. 다음 날 촬영도 있으니 일찍 자야지 생각하면서도 오늘 10만명이 넘어갈 것 같아 자꾸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감사의 의미로 빨간 고추 다발을 만들어 먹방을 했습니다. 하하.”

그는 입에 음식을 잔뜩 욱여넣지 않는다. 가학적일 정도로 맵거나 짜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지도 않는다. 단지 식당 앞에서 “하야쿠(はやく·빨리) 먹고 싶다!” 외친 뒤, 그 식당에서 조리해 주는 대로 한 번에 적당한 양을 깔끔하게 먹는다. 그 모습이 한국인과 닮은 게 특징이라면 특징. 곱창볶음을 먹고 나면 메뉴판에 써 있지 않아도 볶음밥을 찾고, 소주 뚜껑을 따기 전 병을 빠르게 돌려 회오리를 만든다. “그르그르그르~”라는 추임새와 함께.

-한동안 유행한 먹방과는 좀 다릅니다.

“저는 많이 먹지도, 엄청 매운 걸 먹지도 못해요. 단순한 ‘먹방’이 아니라 짧은 드라마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식당까지 찾아가는 제 여정을 함께하는 거죠. 혼자 식당을 고르고, 편집하고, 대사를 입혀요. ‘먹는다’라고 안 하고 ‘목을 타고 넘어간다’고 표현하는 식으로 단어 하나까지 세심하게 고르죠. 일본 시청자들은 제가 쓰는 오사카 사투리가 재밌대요. 한국 시청자들은 제 반응과 행동을 즐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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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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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다른 먹방 채널과 다른 점이라면 40·50대 남자 시청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거에요. 을지로나 종로에 가면 저보다 열 살쯤 많은 형님들이 아는 척을 합니다. 감사한 일이죠.”

시청자는 두 가지에 열광한다. 허름한 한국 노포를 찾아 깔끔하고 맛깔나게 먹는 모습. 그리고 한국에 15년 동안 살았다는 그의 시선. 식당 앞에 마련된 경로석을 보고 “몇 살부터 노인이지? 내가 앉으면 안 되나?” 질문한다. 을지로 터줏대감인 맥줏집 ‘오비베어’를 발견하곤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가 식당을 찾아가는 길목의 모든 것이 콘텐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일본인이라 ‘한본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밥!”을 외치며 식당으로 뛰어가는 그에겐 “밥들갑(밥+호들갑)을 떤다”며 웃는다.

-한국어를 굉장히 잘하시네요?

“어학당에 3개월 다녔는데 일본인과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학생 식당에서 혼밥 하고, 저녁엔 밤새 한국 사람들과 술을 마셨어요. 그래도 어학당 수업에 빠지진 않았죠. 선생님이 ‘히로씨 오늘도 술 냄새가 나네요’ 하셨지만(웃음). 끝날 때 되니 듣기 성적이 쑥 올랐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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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고추와사비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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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 왜 ‘고추와사비’인가요?

“한국을 상징하는 게 뭘까 생각하니 김치부터 떠올랐는데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을 나란히 붙일 게 없더라고요. 한국과 비슷한 일본 식자재를 찾다 와사비가 떠올랐어요. 고추 속에 있는 와사비가 ‘한국에 있는 나’ 같다고 생각했지요. ‘하야쿠 먹고 싶다!’도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은 거고요. 한본어(한국어+일본어)라고 하더라구요. 하하.”

-고추와 와사비의 맛은 좀 다르죠.

“고추는 화끈하고 뒤끝 없는 한국 사람과 같아요. 엄청 세게 매운 맛이 훅 치고 들어오죠. 사라질 때도 싹 사라지고요. 와사비는 여운이 오래 가는데 일본 사람 성격과 비슷해요.”

◇밥으로 시작되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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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승헌과 함께 출연한 영화 <대장 김창수>의 한 장면. /요시모토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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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배우.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클럽에서 옷도 팔고 즐기기도 하는 ‘이벤트’를 열었다가 퇴학을 당했다. 퇴학 전 정학 기간 비디오숍에서 빌린 영화를 쉬지 않고 보다 영화에 끌렸다. 오사카에는 영화 제작사가 없다고 해 무작정 도쿄로. 월세를 내고 나니 돈이 없어 철판구이 집에서 일했다. 손님 중 한 명이 “다음 주에 한번 와보라”며 명함을 줬다. 현재 소속사인 요시모토흥업이었다.

-곧바로 일이 풀렸네요?

“요시모토흥업은 개그맨이 많아요. 제 고향 오사카가 기반인 회사인데도 우리끼리는 ‘공부 못한 사람들이 모인다’고 했지요. ‘이런 데는 안 간다’고 말하려고 회사에 갔다가 배우들이 즉흥 연기를 연습하는 모습을 봤어요. 재밌어 보여서 ‘일단 해보겠다’고 했지요.”

-한국엔 왜 왔나요?

“20대 중반까지 연극이나 영화 단역을 하며 살았어요. 당시 DVD로 ‘쉬리’나 ‘주유소 습격 사건’ ‘박하사탕’ 같은 한국 영화를 봤는데 ‘이런 게 리얼이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다가오는 힘이 세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한국어도 배울 겸 무작정 한국에 와서 세 달을 지냈는데 그 생활의 힘도 셌나 봐요. 일본에 돌아가서도 자꾸 그립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왔죠.”

한국에서 그는 2008년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으로 데뷔했다. 이후 ‘명량’ ‘대호’ ‘동주’ ‘밀정’ ‘박열’ 등 역사물에 자주 얼굴을 비췄다. 2016년 KBS가 만든 다큐멘터리 형식의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서 이순신 장군과 전쟁을 벌인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을 맡으며 주목받았다. 2022년 공개된 애플 TV+의 ‘파친코’에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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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씨의 본업은 배우. <동주> <박열> <명량> 등의 영화와 애플TV+의 <파친코>에도 출연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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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활동하는 게 더 쉽지 않았을까요?

“배역을 받아 연기하는 건 똑같아요. 가장 다른 게 뭔지 아세요? ‘밥’이에요. 촬영 현장에서 일본은 도시락을 받아 각자 먹지만 한국엔 밥차가 있더라고요. 첫 영화에서 당시 주연이던 조승우씨가 ‘일본 사람이에요?’라며 말을 걸었어요. 일본에는 없는 일이에요. 주연부터 조연, 스태프까지 함께 밥 먹으며 이야기하더라고요. 밥으로 모든 관계가 시작되는 거죠. ‘역시 이쪽이 내 스타일인데?’ 싶었지요.”

밥차에 붙잡혀 한국에 남다니. 그가 맛집을 찾아다니는 유튜브 채널을 만든 것은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인 경우가 많아요.

“임진왜란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속의 디테일은 배운 적은 없어요. 매번 새롭게 알게 되는 역사가 있어요.”

-주로 악역을 맡죠?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의자를 발로 차는 것처럼 평소에 못 하는 행동을 할 수 있죠(웃음). 이순신 장군에게 맞선 왜장 역을 연기할 때는 당당하게 보이려 노력했어요. 기존 작품들은 왜적이라고 바보처럼 그리는 경우가 많아 참고하지 않았어요. 일본을 대표해서 온 장수니까 그 역시 부하들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요? 비록 졌지만.”

◇일본과는 다른 한국 노포의 맛

-그런데 왜 유튜브인가요?

“코로나 때 일감이 뚝 끊어졌어요. ‘고독한 미식가’ 느낌으로 일본 사람에게 한국 식당을 소개해 주자 했는데 웬걸, 한국 시청자가 늘더라고요.”

-한식과 일식에 비슷한 게 있나요.

“일식은 소재의 맛으로 먹어요. 소금만으로 간해서 내놓는 음식이 많죠. 반면에 한식은 ‘양념의 문화’라고 생각해요. 같은 소재를 사용해도 양념에 따라 맛이 달라지잖아요.”

-못 먹는 음식은 없나요?

“없는 거 같아요, 홍어도 먹을 수 있으니까. 아! 번데기요.”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전엔 감자탕이었는데 지금은 순댓국이요. 일본에 갔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무조건 순대나 순댓국을 사 먹어요. 일본엔 그런 음식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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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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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어울리는 장소를 고민하다 순댓국 집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그가 즐겨 마시는 진로가 없어 빨간색 오리지널 참이슬 소주를 시켰다. 순댓국이 나오기도 전에 깍두기와 김치를 집어 먹은 그가 “김치가 맛있네요, 이 집”이라고 했다. 푹 익은 김치를 더 좋아한다고.

-일본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하나요?

“관광객의 시선은 저도 몰라요. 일본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가게에 가면 ‘종로, 을지로에 가면 더 맛있는 곳이 있는데’ ‘이 가격에 이걸 먹는다고?’란 생각이 들 때가 많죠. 강남이나 잠실 쪽 맛집은 제가 잘 모릅니다. 지방에 한번 와 달라는 분들도 있고요.”

-왜 노포만 찾아다니나요?

“일본에도 오래된 식당은 많아요. 하지만 일본은 셰프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장인 정신’에 집중하죠. 한국 ‘노포’의 맛은 그 동네에 녹아든 식당의 분위기와 오래 합을 맞춰온 이모(종업원)들까지 모두 포함한 단어라 생각해요. 그게 바로 한국의 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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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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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그의 뚝배기가 텅 비어 있었다. 수북이 쌓아둔 김치, 깍두기도 사라지고 없었다. “이 집 또 와야겠어요.” 호쾌하게 웃으며 소주를 마시는 그에게서 한국 아저씨의 모습을 봤다. “저 형님이랑 소주 한잔하고 싶네”라는 댓글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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