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8월 19일 자 조선일보 만화 '멍텅구리'에 묘사된 설렁탕 배달부(위)와 1982년 '교회사회선교협의회 사건' 때 검찰청사에 설렁탕 200여 그릇을 배달한 배달원들 모습(경향신문 1982년 4월 24일 자). |
옛 시절 식당들, 특히 전통 깊은 맛집 중엔 이런저런 이유로 배달을 안 하는 집들이 있었다. 제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했던 서울 중구의 유명 곰탕집은 어느 날 청와대 측에서 배달해 달라고 연락했지만 "우린 배달 안 한다"고 거절했다. 할 수 없이 청와대 직원들이 식당으로 그릇 들고 찾아와 곰탕을 사 들고 가야 했다. 그 곰탕집은 "가게 밥그릇이 밖으로 빠져나가면 복(福)도 돈도 빠져나간다"는 믿음을 개업 초부터 붙들고 있다고 했다.
오늘날엔 전화 한 통이면 배달되지 않는 음식이 드물지만, 옛 시절엔 제한적인 메뉴만 배달해줬다. 짜장면이 등장하기 이전인 일제강점기에 가장 흔히 배달시켜 먹던 음식은 설렁탕이었다. 1920년대 '경성'에서 '모던 뽀이' '모던 걸'들이나 젊은 부부들이 밥 짓기 싫을 때 주로 배달시켜 먹었다. 광복 이후에도 설렁탕 배달은 계속됐다. 여러 반찬 필요 없이 탕 한 그릇에 깍두기면 되니 여러 회사는 물론 언론사·검찰·경찰의 야근 때, 심지어 국회의원들 철야 농성 때도 설렁탕 뚝배기가 배달됐다.
경찰 조사받는 피의자들에게도 많이 배달시켜 주다 보니 영화 속 불량배들 대사에 "짜장면은 당구장에서, 설렁탕은 유치장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표현까지 들어갔다.
설렁탕이 누리던 '국민 배달 음식'의 자리는 광복 이후 등장한 짜장면이 차지했다. 무거운 질그릇 뚝배기를 많을 땐 열 개도 넘게 목판에 싣고 나르던 설렁탕과 달리, 짜장면은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 철가방에 넣고 오토바이로 총알 배달 경쟁을 벌였다. 1998년 고려대 앞 중국집의 어느 배달원은 이 대학 경영학 교수로부터 남다른 서비스로 인정받은 끝에 '고객 감동 마케팅'을 강연하는 스타 강사가 됐다. 교수는 이 배달원의 차별성을 ▲짜장면 시킨 고객에 짬뽕 국물을 서비스하는 '제품 믹스 전략' ▲양파를 좋아하는가, 단무지를 선호하는가 등 고객 취향을 기록해 활용한 '데이터베이스 마케팅' 등 5가지로 분석했다(매일경제 1998년 2월 24일 자).
조금씩 진화해 온 한국의 음식 배달 문화에 또 하나의 혁신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지난주 보도에 따르면 모 벤처 기업이 대학팀과 손잡고 '음식 배달 로봇'을 개발해 5월부터 실내 푸드 코트에서 운행을 시작해 실외로 확대한다고 한다. '비대면(非對面)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딱 맞는 방식 같다. 하지만 로봇이 복잡한 인파를 잘 헤쳐 갈 것인지, 배달할 음식을 누가 훔쳐 가지는 않을지 등등 우려도 없지 않다. 배달 로봇이 실외까지 주행하며 새로운 음식 배달의 시대를 열지 지켜볼 일이다.
[김명환 前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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