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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트럼프 vs 캘리포니아…이민자 놓고 ‘성전(聖戰)’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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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의 피난처’ 캘리포니아주(州)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힘겨루기가 격화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는 트럼프 행정부에 저항해 싸우는 최전선”이라고 표현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이민자 추방 정책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불법체류자 보호를 위한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트럼프 행정부도 강력 대응에 나섰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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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5일 트럼프 타워 앞에서 다카(DACA·불법체류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 폐지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사진=블룸버그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미국 내 불법 이민자 1100만명을 강제 추방하겠다고 공약했다. 취임 뒤에는 불법 입국 부모를 따라 미국에 들어온 88만명의 불법 체류 청년들의 추방을 유예하는 ‘다카(DACA) 프로그램’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양측은 여전히 팽팽한 대립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미 주요 언론들은 캘리포니아가 ‘성역 전쟁’ ‘성스러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3일 취임 뒤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주를 방문할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 미 법무부, 캘리포니아 주정부 상대 소송 제기

제프 세션스 미 법무장관은 지난 6일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하비에르 베세라 캘리포니아 주 법무장관을 피고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 법무부는 캘리포니아주가 불법체류자 보호를 위해 지난해 통과시킨 ‘피난처 주’ 법안을 문제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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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세션스 미국 법무장관이 2018년 1월 26일 미 버지니아주 노퍽시에서 이민과 국가 안보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 /블룸버그


브라운 주지사는 지난해 10월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이민 증명서를 소지하고 있지 않은 이민자들을 보호하는 내용의 법안(SB54)에 서명하고 ‘피난처 주’를 선포했다. 이 법안은 캘리포니아 주 자치 경찰 등 공무원이 이민집행국(ICE)이나 국경세관보호국(CBP) 등의 불법체류자 단속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은 올해 1월1일부터 공식 시행됐다.

캘리포니아에는 이외에도 캘리포니아 민간 고용주가 이민자 직원을 단속하는 이민 당국에 협조하는 것을 금지하고, 직원에게 단속 사실을 미리 알리도록 하는 법안(AB450), 주 관할 구금시설에서 이민자의 불법체류 사실을 ICE 등에 알리지 않도록 규정한 법안(AB103) 등 이민자 보호 관련 법안이 마련된 상태다.

세션스 장관은 이러한 법안들이 미국의 헌법을 위반하고, 연방 이민 당국 관계자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했다. ICE가 불법체류자 단속에 나선다는 정보를 24시간 전에 공표한 리비 샤프 오클랜드 시장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세션스 장관은 캘리포니아 주정부 인사들을 “과격한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비난했다.

◇ 캘리포니아 강력 대응 선포… NYT “트럼프, 캘리포니아 기선제압 나서”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브라운 주지사와 베세라 주 법무장관은 7일 소송을 제기 소식을 전해들은 뒤 주정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프(세션스), 워싱턴에서는 정치적 서커스가 관행일지 모르지만, 여기(캘리포니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연방 정부가) 샌프란시스코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며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경제의 심장이다. 이 소송은 현명하지 못하며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다”고 비난했다.

마크 퍼렐 시장은 세션스를 “얼간이(morons)”라고 부르며 소송에서 공개 변호인을 위한 예산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럴 스타인버그 미국 새크라멘토 시장도 공영 라디오를 통해 “자랑스럽게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WP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자치 정부다. 캘리포니아주 전체 인구 3900만명 중 27%가 이민자로 구성돼있다. 특히 미국 전체 불법체류 외국인의 25%가 캘리포니아에 거주 중이며, 캘리포니아에서 근로하는 노동자 중 불법체류자는 약 175만명에 이른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는 지난 2014년 미국 전체 도시 중 가장 많은 불법체류자가 거주한 도시로 집계됐다고 더힐은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 피난처 도시들에 재정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해왔다. 그러나 주정부 차원에서 이민자 피난처를 자처한 곳은 캘리포니아가 처음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캘리포니아를 기선제압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분석했다. 캘리포니아가 트럼프 정부의 이민자 정책에 반대하는 주정부들의 선례가 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 미 언론 “성스러운 전쟁”…트럼프, 13일 캘리포니아 첫 방문

미 주요 언론들은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싸움을 ‘성역 운동’ ‘성스러운 전쟁’ 등으로 보도했다. NYT는 “트럼프는 성역 운동을 멈추지 못할 것”이라며 “주정부가 지역의 이익에 불리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판단해 연방 정부의 정책을 거부하는 것을 연방 정부가 비난하고 저지할 권리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매체는 “미 대법원은 지난 1997년 총기 구입자의 신원 조회를 의무화한 ‘브래디법’과 관련, 이를 반대한 일부 주정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총기 구입자의 전과 조회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며 “즉, 대법원은 주정부가 대체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연방법 집행을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힐은 “만약 캘리포니아주가 소송에서 패한다면,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불법체류자 추방 정책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 것”이라며 “다른 주에서 캘리포니아와 같은 이민자 보호법을 만들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3일 취임 후 처음으로 캘리포니아를 방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 공화당 기금모금 행사에 참석하고, 샌디에고에서 국경장벽 건설 진행상황을 확인할 예정이다.

캘리포니아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국경장벽 건설 지지자들과 이민자 추방을 반대하는 집단 간의 충돌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LA, 샌디에고 경찰청 등 치안 당국은 대통령 방문 중 비상 상황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다만, LA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이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명확치 않다”며 “아직까지 예정된 대규모 시위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이선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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