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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대학 내 성폭력 피해자 92% "학교에 신고 안 해…해결 안 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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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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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활 중 학생이나 교수·강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피해자 대다수가 이를 학교 측에는 알리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2일 조현각 미시건주립대 교수(사회복지학) 연구팀이 2016년 시행한 ‘대학교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대학생과 대학원생 1944명 가운데 ‘대학생활 동안 성희롱을 한 번이라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459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27.3%에 달했다. 또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 ‘성폭력을 한 번이라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159명(8.17%)이었다. 이 조사는 서울 소재 6개 대학의 남녀 학부·대학원생을 상대로 2016년 10~12월 온라인에서 이뤄졌다.

대학 내 성희롱의 경우 가해자는 79%가 학생이었고, 교사·강사(15%)가 그 다음으로 많았다. 신체 접촉이 있는 성폭력 또한 가해자 67%는 학생이었고 교사·강사(19%)가 그 다음 순이었다.

특히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약물이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약물이나 술로 잠들거나 의식을 잃어 무방비인 상태에서 상대방이 키스를 하거나 성적으로 만지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는 항목에 103명이 ‘그렇다’고 답했고, 같은 상황에서 성관계까지 했다고 응답한 사람도 46명에 달했다.

피해 경험이 있는 학생 중 20%는 ‘두려움과 안전에 대한 걱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학업, 과제 시험 등에 집중할 수 없다(17%)거나, 일상생활에서 무기력과 절망감에 시달린다(16%)는 사람도 많았다. 성폭력으로 멍들거나 이가 부러지는 등 몸을 다쳤거나(25명) 성병에 걸리고(9명) 임신한 경우(4명)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 대부분이 이같은 피해와 관련해 대학 내에서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피해 때문에 대학 내 프로그램·기관·사람과 접촉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92%가 ‘없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42%·복수응답),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42%), ‘비밀보장이 안 될까봐 두려워서’(37%), 어디로 갈지 몰라서(33%), 안 믿어줄까봐(13%)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피해 학생 27%는 이 경험을 ‘친구’에게 말했다고 답했고, ‘가족’에게 알리는 경우는 6%에 그쳤다. ‘누구에게도 (피해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11%였다.

다른 사람이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노출된 것을 직·간접적으로 알았다는 학생도 많았다. ‘대학 입학 후 성폭력이나 성희롱을 목격하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학생 461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대학 입학 후에 친구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심을 해 본 적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176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또 ‘대학 입학 후 술에 취한 사람이 성관계로 짐작되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212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를 멈추기 위해 개입했다고 답한 사람은 18명에 그쳤다. 다른 형태로 행동을 취하거나(25명),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6명)는 응답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 학생들은 ‘무엇을 할 지 몰라서’(88명), ‘다른 이유 때문에’(36%)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연구에 참여한 엄명용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해외 대학의 실태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취중 성폭력의 빈도가 두드러지게 높고, 피해 사실에 대한 신고는 꺼리는 경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며 “학생들이 신고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낙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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