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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만물상] '독살자' 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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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암살'이란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반대 세력 제거 작전을 다룬 영화다. 푸틴 집권 이후 부쩍 늘어난 독살 사건들을 소재로 했다. 그 대상도 국내외 정치인, 비판적인 기자, 인권 변호사, 전직 스파이 등을 가리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정치적 암살의 역사는 뿌리 깊다. 표트르 3세와 그의 아들 파벨 1세 등 제정 러시아의 황제가 암살되거나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당연히 비밀경찰에 의한 공포정치가 횡행했다. 러시아혁명 전야에는 국정을 농단하던 괴승(怪僧) 라스푸틴이 귀족들에 의해 네바 강 얼음장 밑에 수장됐다. 혁명 후인 1921년 레닌은 모스크바의 루비양카 정치범 수용소에 '독극물연구소'를 만들었다. 암살을 심장마비 등 자연사한 것처럼 위장하는 독극물을 개발하기 위해 소련의 과학자들이 총동원됐다고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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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어린 시절 영화와 소설을 통해 스파이 활동을 동경하다가 대학 졸업과 동시에 KGB에 들어갔다. 베를린 장벽 붕괴 시 동독에서 암약하던 그는 KGB가 순수하게 배양한 공작원 출신이다. 그의 암살 지시가 드러난 사건이 2006년 전직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으로 있다 영국으로 망명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독살 사건이다. 런던에서 방사능 독극물이 들어간 녹차를 마시고 사망한 리트비넨코는 죽기 전 "배후는 푸틴"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러시아 첩보원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지난 4일 영국의 소도시 솔즈베리의 한 쇼핑몰 벤치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사건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러시아 정부의 개입이 드러나면 러시아 월드컵에 불참하겠다"고 강경 대응을 밝혔다. 러시아는 반발하지만, 푸틴 집권 이후 숱하게 벌어진 정치적 암살의 하나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푸틴은 유도로 단련된 강인한 몸매를 자주 과시한다. 굳게 다문 입가에 번지는 미소 뒤에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가벼이 여기는 잔인한 성격이 드러난다. 그는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 사건 당시 무리하게 진압을 지시해 인질 130명을 죽음으로 몰고가기도 했다. 시리아의 학살자 아사드를 비호하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고집스럽게 지키려는 것도 KGB 시절부터 몸에 밴 것은 아닐까. 말만 공산 독재를 끝냈다고 하지 푸틴이 지배하는 러시아는 여전히 스탈린 치하 소련이나 차르 시대의 공포정치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참 고약한 이웃 나라들이다.

[정권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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