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너머 주체적 삶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초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 등 13개 부문 후보 오른 ‘셰이프 오브 워터’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작품의 깊이와 다양성에서 최근 몇 년의 시상식 중 가장 쟁쟁한 영화들이 후보로 올랐다고 평가받는다. 작품상 부문엔 총 9편이 이름을 올렸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 스레드>,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 크리스토퍼 놀런의 <덩케르크> 같은 거장의 영화가 눈에 띈다. 재기발랄한 신인·중진급 감독의 작품도 많다. 지난해 최고 화제작 조던 필레 감독의 <겟 아웃>,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 등이다.

이 중 가장 주목받는 영화는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미술상, 음악상, 여우주연상 등 총 13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다.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등으로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냈던 감독의 역량은 이번 영화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푸른 물에 잠긴 집으로부터 시작되는 첫 장면은 단숨에 관객을 끌어들인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올해 골든글로브 감독상 수상작이다.

영화는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 볼티모어의 항공우주연구센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언어장애가 있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이곳의 청소부다. 이웃집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 회사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와 어울리며 평범한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 날 센터의 실험실에서 인간과 어류의 모습이 섞인 괴생명체를 발견한다.

엘라이자는 그날부터 사람들 몰래 괴생명체인 ‘그’를 만나러 간다. 먹을거리로 계란을 챙겨주고, 전축을 들고 와 삭막한 실험실에 음악도 틀어준다. 말로 뜻을 전할 수는 없지만, 둘은 점차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나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구소련의 기술을 따라잡으려던 미국은 괴생명체를 해부해 과학실험을 할 계획을 세운다. 엘라이자는 실험실의 보안책임자 스트릭 랜드(마이클 섀넌)를 따돌리고 ‘그’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지만, 영화는 미·소 냉전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델 토로 감독은 그의 특색이 살아 있는 전작 <악마의 등뼈>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등에서도 스페인 내전을 사건의 밑바탕으로 삼는 등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삶을 연결짓는 데 관심이 많았다.

영화에서는 두 체제의 과열된 우주개발 경쟁이 주로 얘기되는데, 과학기술에 몰두하는 모습은 새로운 것을 향해 나가는 이들과 제자리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으로도 그려진다. ‘캐딜락’을 타며 성공한 사람들을 위한 ‘자기계발서’를 읽는 보안책임자 랜드는 가장 미래지향적인 인물이다. 반대로 아마존에서 잡혀온 괴생명체, 이제는 낡아빠진 극장 건물 위에 세들어 사는 엘라이자, 사진의 시대에 영화 포스터를 그리는 자일스는 과거의 ‘골동품’처럼 보인다.

두 체제의 대립, 새것과 헌것의 대립 외에도 영화는 정상성과 비정상성에 대한 대립도 그려낸다. 장애를 가진 엘라이자, 흑인인 젤다, 괴생명체, 그리고 외로운 사랑을 하는 자일스까지 영화의 주요 인물은 모두 사회가 정한 정상의 개념에서 벗어난 이들이다. 다만, 영화는 이들을 마냥 불쌍하거나 안타깝게 그리지 않는다. 이들은 사회의 억압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간다.

경향신문

무엇보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신비롭고 아름답다. 계란 모양의 타이머 등 소소한 소품부터 엘라이자가 살고 있는 집, 주변의 극장 등은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디자인돼 있다. 특수효과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경력을 시작한 델 토로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강점을 제대로 드러냈다.

그의 기괴한 상상력과 다소 잔혹한 연출은 이번 영화에서도 엿보인다. 특히 더그 존스가 연기한 괴생명체 디자인은 독특하면서도 멋지다. 전체적인 몸의 형태는 인간의 모습과 같지만, 겉이 초록의 비늘로 덮여 있다. 낯설지만 ‘기분 나쁨’이 아닌 ‘매혹’으로 다가온다.

제목과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에서는 물과 관련된 이미지가 넘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물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이는 차창의 물방울로 맺히기도 하고 수로를 타고 바다로 모이기도 한다.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물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결국 감독은 어떤 특정한 형체를 가지지 않은 ‘물’의 모양처럼 ‘사랑’과 ‘아름다움’ 역시 정해진 모양이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등장인물의 감정과 잘 동화된 배우들의 열연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영상과 함께 흐르는 음악도 감상의 풍미를 더한다. 음악감독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아카데미 음악상, <킹스 스피치>로 그래미상을 받은 프랑스 출신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맡았다. 22일 개봉.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