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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소년과 청년 사이 ‘환절기’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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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배우 이원근 인터뷰

22일 개봉 ‘환절기’서 동성애 연기

담담한 대사로 섬세한 감정 살려

“스킨십 연기 어땠냐고 묻지만

특별할 거 있나요, 그저 연인인데”

‘괴물들’ ‘명당’ 등도 연이어 개봉

“매번 1%라도 성장하는 연기로

색이 분명한 배우의 길 가고파”



한겨레

명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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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원근(27)은 아직도 소년과 청년, 그 사이 어디쯤 서 있는 느낌을 준다. 교복을 걸치고 거친 언어를 쏟아내면(<여교사>) 영락없는 사고뭉치 고교생이었다가, 양복을 입고 법률용어를 읊어대면(<굿 와이프>) 또 금방 20대 신참 변호사인 듯 보인다. 한껏 눈웃음을 머금었을 땐 한없이 순수해 뵈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할 땐 반항과 일탈이 묻어난다. 아직은 흰 여백이 거의 전부인 필모그래피처럼, 그의 얼굴은 어떤 색깔이든 머금을 수 있는 스펀지처럼 해맑다.

새 영화 <환절기>(22일)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원근은 “이번 영화 속 용준이 실제 내 모습과 가장 비슷하다”고 했다.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낯을 가리고, 외로워 보이는 모습”이 똑 닮았단다.

영화 <환절기>는 외국에서 사업하는 남편과 떨어져 사는 미경(배종옥)이 외아들 수현(지윤호)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아들과 그의 절친인 용준(이원근)이 사랑하는 관계였음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성 소수자 문제를 다룬 퀴어 영화지만, 오히려 사고로 깨어나지 못하는 수현을 사이에 둔 미경과 용준의 ‘관계’에 더 초점을 맞춘다. 이원근은 수현과의 사랑뿐 아니라 미경과의 ‘유사 모자 관계’까지 디테일한 감정을 넘나들며 연기해야 하는 용준 역을 무난하게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제 취미가 꽃꽂이예요. 한 달에 몇 번씩 강습을 듣는데, 재밌어요. 하하하. 스타티스를 좋아하는데, 애초에 메말라 있는 그 느낌이 맘에 들어요. 음악도 조용하고 슬픈 노래를 위주로 들어요. 용준이처럼 스스로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고요.”

그래서 대사도 거의 없이, 대사와 대사 사이의 여백에 감정을 실어야 하는 용준을 연기하는 것이 힘들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환절기>는 감정의 폭발이 거의 없는 영화예요. 대사보다는 감정의 잔상이 진하게 남도록, 그래서 관객이 그걸 음미하도록 연기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이동은 감독님이 촬영하며 가장 많이 한 주문도 ‘감정 빼주세요’였어요.” 되레 힘든 것은 담담한 모노톤의 대사였다. “어눌하고 느리게 하라는 감독님의 주문에 따르자니 슬로모션으로 연기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색했어요. 하하하. 완성본을 보니 대사가 너무 아쉽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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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원근. 유본컴퍼니 제공


이원근은 앞서도 퀴어 코드가 강한 <드라마 페스티벌―형영당 일기>(2014·문화방송)에 출연한 바 있다. 비슷한 색깔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저는 끝나고 계속 생각나 곱씹게 되는 영화를 좋아해요. 최근 영화 중에 <녹터널 애니멀스>는 너무 좋아서 지브이(GV) 보러 부산까지 갔을 정도예요. 취향이 좀 확실한 편이랄까? 대본을 볼 때도 캐릭터 먼저 보는 편이고요. 아버지가 가출하고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자살하고, 내 편이라고는 없는 용준이 캐릭터가 몹시 기대됐어요. 사실 제가 아직 작품을 막 고를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요. 하하하.”

남들은 자꾸 수현과의 스킨십 연기가 어땠느냐고 묻는데, 대답할 말이 별로 없단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니까 그저 연인처럼 보이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 특별할 필요도, 이유도 없잖아요?”

영화의 제목이자 중요한 주제의식을 담은 ‘환절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연기했는지 물었다. “환절기는 계절이 변하는 시기잖아요? 겨울을 앞두고 외투를 사며 준비를 하죠. 근데 용준이는 찬란한 여름에서 한순간 겨울을 맞게 돼요. 사고를 당한 사랑하는 수현, 갑자기 차가워진 미경을 감내해야 했죠. 근데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한 환절기를 감당하는 건 용준과 미경이 다르지 않아요. 결국 둘이 서로를 보듬고 이해해 가는 과정이 영화의 줄기다 보니, 감정의 선과 진폭을 이해하는 데 배종옥 선생님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이원근은 <환절기> 외에도 올해 <괴물들>, <명당>, <그대 이름은 장미>로 연이어 관객과 만난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괴물들>에서는 고등학생으로 출연하고 <명당>에서는 ‘왕’ 역을 맡았다. “<명당>에서 왕 목소리를 내기 위해 2~3개월 발성 트레이닝 받고 연습하다 성대결절이 왔어요. 어떤 연기를 하든 1%라도 성장했으면 해요. 매번 연기하고 나면 너무 아쉬운데, 37살이 돼도, 47살이 돼도 지금처럼 아쉬운 마음에 스스로를 치열하게 채찍질하며 괴롭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야무진 초심만 붙잡는다면 “청춘스타가 아닌 색이 분명한 배우의 길을 걷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결국 이뤄지지 않을까.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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