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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주민·지자체 주도하던 재건축…정부가 처음부터 틀어쥐고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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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건축 또 옥죄기 ◆

매일경제

안전진단 E등급 vs D등급
앞으로는 붕괴 직전 수준인 E등급을 받아야 재건축이 가능해진다. 준공 38년 만인 2007년 재난위험시설 E등급을 받고 지난해 철거된 성북구 정릉 스카이아파트(왼쪽). 통상 재건축 아파트가 받는 D등급(조건부 재건축)의 대치동 은마아파트 모습. [사진 제공= 성북구청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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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정부가 발표한 새 안전진단 절차와 기준은 아파트에 재건축이 정말 필요한지를 첫 출발 단계에서부터 전반적으로 따져보겠다는 목적을 담고 있다. 구조안전 진단 배점을 높인 것 외에도 안전진단 모든 과정을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감시하고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확 바뀌었다. 그동안 재건축 연한이 도래하고 주민들 의지가 확고하면 안전진단이 무리 없이 진행되던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우선 안전진단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첫 단계인 현지조사부터 한국시설안전공단·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 공공기관이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주민 10% 이상이 동의서를 내면 시장·군수가 구청 직원을 시켜 사전 현지조사를 한 후 안전진단 실시 여부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미 주민 동의를 받은 사안을 '표심'을 고려해야 하는 지자체장이 반려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 주민 목소리가 큰 강남에선 주민들이 신청만 하면 곧바로 안전진단을 실시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정부의 새 지침은 공공기관을 사전조사에 참여시켜 불필요한 안전진단 자체를 출발단계부터 잘라내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해석된다.

국토부 관계자도 "현지조사를 진행할 때 구조체 노후화·균열상태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부분을 일반 구청 공무원들이 육안으로 확인하는 한계가 있었던 점이 사실"이라며 "공공기관이 참여하면 현지조사 전문성과 객관성이 담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전진단 결과 '조건부 재건축'을 받은 경우 공공기관의 적정성 검토를 의무적으로 거치게 한 점도 재건축 업계에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A~C등급은 유지보수, D등급은 조건부 재건축, E등급은 재건축 판정을 받아 철거 후 재건축사업의 진행 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조건부 재건축은 안전진단 결과 구조적 결함은 없지만 지자체장이 지역여건·주택시장 등을 고려해 재건축 시기를 조정하도록 만든 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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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D등급(조건부 재건축)과 E등급(재건축)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재건축' 판정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게 정비업계 설명이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현재 재건축을 진행 중인 아파트의 90% 이상이 D등급을 받았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잠실주공5단지 등 강남 재건축 대표단지들도 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 판정이 난 후 사업이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이 D등급 아파트의 안전진단 적정성을 의무적으로 검토한다면 사업기간이 늘어질 위험이 높다고 봤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최종 판단은 시장·군수 등이 하지만 공공기관이 재건축 적정성을 지적한다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적정성 검토에 소요되는 시간과 안전진단 판정이 뒤바뀔 위험을 고려하면 사업속도가 '생명'인 재건축 사업엔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토부가 새 안전진단 기준의 구조안전성 항목 가중치를 높이면서 층간소음·주차·녹물 등 주민의 주거환경성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거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예전 기준 때 40%에 달했던 주거환경성 가중치는 이번에 15%로 크게 줄어들었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주거환경 항목에서 E등급을 받으면 다른 항목과 상관없이 재건축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비업계 관계자는 "주거환경 E등급은 예전 '봉천동 달동네' 수준의 환경에서나 받을 수 있는 점수"라며 "서울 시내 대부분 아파트들은 아무리 낡았어도 이 기준을 맞추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내진설계가 반영되지 않은 아파트 재건축이 새 안전진단 기준 때문에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진설계 미반영 아파트는 구조안전성 분야만 집중 진단받고, 주거환경·건축마감 및 설비노후도·비용분석 분야는 받을 필요가 없도록 절차가 간소화돼 있다"며 "기능적 결함이 확인되면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건설업계에 따르면 구조안전성 항목에서 E등급은 '붕괴 직전' 상태로 분류된다.

정부는 최근 포항 지진 발생 등을 감안해 안전성 문제가 확인된 시설물은 재건축 추진이 바로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지금까지 안전진단 절차는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시특법)'과 '도시정비법'상에서 별도로 운영됐다. 따라서 도시 시설물이 시특법에 따라 안전진단 결과 D등급으로 분류되어도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도시정비법상 안전진단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중으로 안전진단을 받으면서 시간이 낭비된다는 지적이 많아 제도를 손질했다"고 설명했다.

[손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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