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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자갈마당, 인권유린의 현장 혹은 다른 이름으로 재생산될 착취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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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 폐쇄 전 모습 담은 사진책 나와

성매매 여성들의 육성 더해 자본에 의한 억압의 기억들 증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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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weet Home.’ 장미꽃 무늬에 둘러싸인 영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대구 성매매 집결지 자갈마당의 한 업소 213호 출입문에 부착된 대형 스티커 문구다. 사진작가 전리해의 섬세한 시선은 자갈마당에서 꽃무늬 벽지, 화분과 인형이 놓인 탁자, 가지런하게 정리된 수건, 크리스마스트리를 잡아낸다. 언뜻 평범한 가정의 소품들을 촬영한 듯한 이미지들은 성매매 집결지가 ‘즐거운 나의 집’과는 전혀 상관없는 불행과 고통의 공간임을 반어적으로 드러낸다. 카메라에 담긴 꽃장식, 키티 등 화사한 ‘장식적 표면’들은 성매매종사자들이 처한 암흑적 현실과 극적으로 대비하려는 작가의 시도라고 책은 설명한다.

사진작가 전리해·오석근·황인모는 2016~2017년 자갈마당에서 사진을 찍었다. <자갈마당>(사월의눈)은 그 촬영의 결과물이다. 사진책은 대구여성인권센터가 취재한 성매매 종사자들의 구술 기록을 더했다. 인권 유린과 폭력, 자아의 파괴를 전하는 여성들의 증언은 처참하다.

경향신문

“유리방 불빛은 정육점 같다고 생각하는 거지. 몸에 되게 해롭지. 그런 생각이 들지. 진짜 인간이 여기 우리가 동물도 아니고 인간인데 이런 불빛 아래 앉아 있어야 하나. … 눈 질끈 감고 하는 거지. 영혼 없이 하는 거지. 내 영혼이 아니라고.”

“살던 남자가 보복 행위 해 갖고 죽고 이런 거 내가 알기만 해도 두 건, 직접 본 게 두 건.”

“이게 반강간이지 뭐.”

“업주들 봐요. 차 수시로 바꾸잖아요, 외제차 벤츠, BMW. 아가씨 하나 엎어트려 놓으면 벌써 모든 게 해결되잖아.”

“네, 저도 자살 시도 많이 하곤 했어요. 응 목도 매 보고.”

오석근은 성매매 종사자들의 신체 부위와 자갈마당의 건축물 사진을 영화의 ‘숏’(shot)처럼 연결한다. 자해한 손목 사진을 가운데 놓고 양옆으로 철거 중인 자갈마당 건축물 사진을 배치했다. 책은 삼면화 사진을 두고 “자갈마당의 가장 깊은 심연(고통, 구속, 상처 등)과 그 심연을 가둬놓고 있는 상징으로서의 건축물이 갖는 간극을 환기시킨다”고 말한다.

경향신문

식욕 억제제인 ‘펜터민’은 모양 때문에 나비라고 불렸다. 성매매 종사자들은 나비를 복용하면 피곤한 줄 몰랐다.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 한 알로는 약발이 안 받아 두 알, 세 알 먹게 된다. 두통, 불면증, 손떨림 같은 증상에 시달린다. “그냥 있어도 팔다리가 막 돌아가서” 응급실로 실려가는 환자도 나온다. 황인모는 종사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약품이나 음료 같은 사물을 흑백으로 담았다. 작가는 성매매 종사자들의 일상을 사물로 전달하려는 일종의 정물화를 시도했다.

사월의눈은 “대구 성매매 집결지 100년 역사에 관한 기록물이자 여성인권운동에 관한 자료집으로서 변주될 수 있는 사진책”이라고 소개한다. 자갈마당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자갈마당이 야에가키초(八重垣町)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1909년 11월3일은 일본 ‘천황’ 생일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일본 남성이 일본 여성을 착취했던 방식대로 유곽이라 불리던 성매매 집결지를 조성한 것이다. 야에가키초는 여성 착취·억압의 오랜 역사와도 이어진다. 일본 수진전(秀眞傳) 신화에서 초고대왕이 천조대신 12명의 왕비 중 8명을 후비로 삼아 가둔 곳이 이즈모(出雲)의 야에가키다.

미군정은 1948년 공창을 폐지했지만, 한국전쟁 시기 자갈마당 등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들은 연합군 위안소로 지정됐다. 책은 “관리주체와 구매자의 얼굴만 바뀐 공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위안소를 드나드는 이들의 70~80%는 한국인이었다. 인신매매도 들끓었다. 1960년대부터 국가 관리 체계가 들어선다.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란 도덕적 낙인으로 범죄화됐다. 성매매 종사자들은 창기에서 위안부로, 다시 윤락녀가 되었다.

자갈마당이란 이름에도 비극이 스며 있다. 저습지라 애초 자갈이 많았다. 여성들이 밤에 몰래 도망치다 자갈 밟는 소리로 들켜버렸다. 여성들을 붙잡은 그 자갈들은 포주들이 깐 것이었다.

자갈마당은 지금 폐쇄 수순을 밟고 있다. 주변엔 아파트가 들어섰다. 입주도 시작됐다. 전국적으로 성매매 집결지 폐쇄에 대한 지자체들의 논의도 한창이다. ‘자갈마당-기억변신프로젝트 2016’을 구상한 독립큐레이터 최윤정은 “그러나 그(지자체 폐쇄 논의의) 이면을 살피자면,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는 당위를 꾸며주는 하나의 수식일 뿐이고, 결국은 자본과 재개발이다. 해당 장소에서 벌어졌던 비인도적인 행태들이나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는 성찰되지 않고 있으며, 애초부터 없었던 곳인 양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 관련 단체들이 우려하는 문제적 지점”이라고 말한다. 책은 여성인권 유린이 장소의 ‘삭제’만으로 뿌리 뽑힐 것인지, 종사자들은 폐쇄 이후 어디로 가야 할지를 묻는다. 책은 폐쇄와 함께 100년의 인권 유린의 장소를 기억하려는 노력이다.

사월의눈은 “성매매 집결지라는 기표 너머 복잡한 의미 작동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 노력 없이 한 세기의 착취적 구조는 다른 이름으로 재생산되기 마련”이라고 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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