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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직설]가장 시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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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기간에 말에 대한 영화 두 편을 보았다.

하나는 <위대한 쇼맨>(2017), 다른 하나는 <패터슨>(2016)이다.

경향신문

<위대한 쇼맨>은 ‘PR(홍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P.T 바넘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다. 빈털터리 소년에서 세계적인 흥행사로 성장하는 바넘이 갖가지 기지로 위기를 극복할 때마다 “사기꾼이잖아”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사기의 기술이야말로 별 의미 없는 물건을 화려하고 특별한 상품으로 도약시키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속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바넘의 어록에 기록되어 있는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 그의 화려한 언변은 많은 사람을 사로잡았다. 어떤 말이 빼어나게 아름답다면, 그건 어딘가에 거짓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패터슨>은 패터슨시(市)에서 버스를 몰면서 시(詩)를 쓰는 패터슨에 대한 영화다. 패터슨의 말은 바넘의 말과 사뭇 다르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비밀의 노트에 기록된 그의 말은 일상에서 길어올린 느낌들 그 자체다. 성냥에 대한 관찰은 연인에 대한 사랑의 시로 이어지고, 그 사랑의 속삭임은 매일 지나치는 길모퉁이에서 만나는 또 다른 빗방울이 된다. 영원처럼 반복되는 시간들 속에서도 어제와 완전히 같은 오늘은 없다. 급박하게 흘러가는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보폭으로 음미하는 세계의 인상은 매 순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를 하나의 우주라고 말하는 것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과장이 아니다.

주저하지 않고 매끄럽게 흘러나오는 바넘의 말과 노트 위에 족적을 남기는 펜의 움직임을 따라 머뭇머뭇 흘러가는 패터슨의 말. 그 말들 사이의 간극이 아무에게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는 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여기저기에서 넘쳐나는 글들이 가장 현란하게 거짓을 꾸밀 수 있는 때이기에 더욱, 과시하지 않는 말의 진실함을 곱씹어 보게 되는 것이다. <패터슨>은 시란 문학 장르의 하나가 아니라 나와 타인과 세계를 만나는 태도를 일컫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시적인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패터슨시(市)가 아닌 2018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적인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 “한국 문학에 노벨상을 안겨 주리라” 기대됐던 한 시인의 추태가 폭로되고, 그 폭로를 폄하하는 온갖 천박한 말들이 소위 ‘문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여기에서 과연 시를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란 말인가.

문학을 잘 모르는 나는 시에 대한 또 한 편의 영화를 떠올렸다. 이창동 감독의 <시>(2010)다. 영화는 간병 도우미 일을 하면서 외손자를 키우던 중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60대 중반의 미자가 한 편의 시를 쓰는 과정을 따라간다.

외손자가 친구들과 집단으로 강간한 소녀 희진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안 미자는 외손자를 위해서라도 조용히 묻어두자는 주변 사람들의 설득을 뒤로한 채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다. 미자는 할머니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주변의 기대와 달리 손자가 아닌 피해자인 희진에게 충실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작(詩作)을 통해 희진이라는 완전한 타자를 만나고 그의 삶과 죽음을 애도한다. 그에게 말이란 내가 사라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상실의 공간이자 타자를 끌어안아 그에게로 녹아드는 제의의 공간이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미자의 시 ‘아네스의 노래’는 이 빈곤한 세계에서 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선하게 답한다. 시의 임무란 어쩌면 불충과 충실의 기예를 선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우리로 하여금 침묵하게 했던 익숙한 법에 불충하고,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 보이지 않았던 존재를 드러내고 대면하게 하는 사건들에 끝까지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렇게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야말로 시가, 영화가, 그리고 예술이 해야 하는 일 아니겠냐고.

그리하여 지금, 여기에서 가장 시적인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이 ‘예술혼’이라는 변명으로 지키고 싶어하는 그 이름들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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