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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성한용 칼럼] 태극기 부대 닮아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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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합리적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은 태극기 부대와 닮아가는 자유한국당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죽어가는 공룡을 닮았다. 몸집이 큰 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태극기 물결에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섞여 있다. 단상의 배경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활짝 웃는 얼굴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 선서 장면이다. 끝없이 울려 퍼지는 군가 소리에 스피커가 터질 듯하다.

“문재인을 박살 내자! 박근혜 대통령 구출하자!”

60~70대 참가자들의 붉은 얼굴에 살기가 넘친다. 주말이면 덕수궁 앞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이다.

“헐~ 이게 뭐니~? 죽 쒀서 김정은 주는 평양올림픽 반대한다!”

국회 앞 건널목에 있는 대한애국당 펼침막이다.

“김일성 가면까지 등장한 평양올림픽! 문재인과 주사파 독재정권 본질 입증!” “문재인, 임종석, 서훈은 북괴의 간첩인가요?”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는 보수단체가 설치한 천막과 자유발언대가 있다. 자극적 글귀가 행인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평창올림픽의 성공 태극기로 응원합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태극기입니다.”

자유한국당 당사에 길게 늘어뜨린 펼침막에도 태극기가 나온다.

“세계인의 축제가 되어야 할 평창올림픽을 인공기가 펄럭이는 북한의 체제 선전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이 정권 핵심에 있는 좌파세력과 주사파들에 의해서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염려하고 있다.”(홍준표 대표)

“북한 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 한마디에 한-미 동맹에 균열이 오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 공조는 점점 무력화되고 있다. 40대와 50대 장년층에서는 이미 북한의 선전장으로 변한 평양올림픽에 대한 원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장제원 수석대변인)

자유한국당의 주장과 논리는 태극기 부대의 그것과 구분하기 어렵다.

야당이 여당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가 본래 갈등을 조직하는 일이다. 그러나 갈등이 아니라 증오를 조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증오의 정치는 위력이 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와 비슷하다. 하지만 절대반지는 위험한 물건이다. 반지를 끼는 사람이 사악해진다. 실체가 없어져도 증오가 증오를 낳는다. 나치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로 사회를 통제했다. 공산당은 지주에 대한 증오로, 파쇼는 공산당에 대한 증오로 권력을 유지했다.

북한에 대한 맹목적 증오는 자유한국당이 자신의 뿌리를 부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7·4 남북공동성명,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군 출신인 그들이 반공의식이 부족해서 북한과 대화한 것은 아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 한반도 평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좋아서 남북정상회담을 한 것이 아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 한반도 평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의 첫번째 원칙은 ‘북한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좌파라고 공격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공수부대 출신이다.

자유한국당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이유가 뭘까? 자유한국당에도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는 두 대의 기관차가 있었다.

월급쟁이로 최고경영자(CEO) 지위에 오른 서울시장 이명박, 박정희 신화를 아우라로 가진 당대표 박근혜였다. 두 사람은 실용 보수와 정통 보수를 각각 상징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야당 구실을 여당 안에서 박근혜 의원이 했다. 진짜 야당은 존재감이 별로 없었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그 막강했던 한나라당이 정치적 자산을 탕진하는 데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정치권력은 그렇게 무상하다.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다.

자유한국당의 가장 큰 문제는 리더가 없다는 것이다. 리더가 없으니 미래가 없다. 당장 6·13 선거 전망이 암울하다.

태극기 부대 수준으로 전락하더라도 악을 써서 정치적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잘될까? 그럴 리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합리적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은 태극기 부대와 닮아가는 자유한국당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죽어가는 공룡을 닮았다. 몸집이 큰 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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