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8 (화)

[필동정담] 신드롬 용어 유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설날 같은 연휴 뒤엔 명절 증후군이라는 현상을 얘기한다. 귀향을 위한 오랜만의 긴 이동이나 운전, 음식 준비와 뒤처리 등으로 생긴 후유증이다. 정확히는 명절 후 증후군이어야 더 맞는다. 영어에 익숙해진 세태를 따르자면 명절 신드롬이라 불러야 할 텐데 이건 명절 증후군이 더 와닿으니 이상하다.

신드롬(syndrome)이란 원래 의학 용어로 공통의 질환이나 장애로 나타나는 일련의 병적 징후를 말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심프텀(symptom)이라는 비슷한 용어가 있는데 신경과 관련해 겉으로 나타나 지각되는 증상을 뜻한다.

1973년 스톡홀름에서 은행 강도에게 잡혀 있던 인질들이 6일간 함께 지내며 강도들에게 동화돼 증언을 거부한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이후 자신에게 해를 가한 친절한 범죄자를 오히려 따르고 동조하는 현상을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불렀다. 최고의 기술로 첨단 기기를 만들지만 자국민을 겨냥한 내수시장에 만족해 국제 표준화에 소홀하다 뒤처진 일본을 빗대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는 말도 나왔다. 남미 대륙과 멀리 떨어져 고립된 갈라파고스제도에 비유했던 표현이다.

특정 인물을 우상시하고 모방하고 싶어하는 대중의 심리를 부추겨 떠오른 연예계나 스포츠계 스타들의 이름에도 신드롬을 붙였다.

미국 팝시장을 흔들며 한류 문화 전파의 선봉장으로 뜬 방탄소년단에게는 BTS 신드롬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호주오픈 남자테니스에서 4강에 오른 정현 선수의 쾌거 뒤엔 정현 신드롬이 유행했다.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쇼트트랙의 임효준, 최민정 선수와 스켈레톤의 윤성빈 선수에게도 각각 윤성빈 신드롬 같은 용어가 쓰일 것이다.

의학 용어였던 신드롬이 사회 현상과 문화 현상에도 이렇게 접목돼 퍼져 있으니 개념 정의가 달라져야 할 판이다. 이젠 무엇이든 다 신드롬이라 부르고 싶어하는 신드롬이 생겨날 정도로 변질됐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면 그만이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이도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끼리만 뜻이 통하고 쓰이는 용어라면 별로 개운치 않다. 한국식 영어인 '콩글리시' 수준을 넘어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는 멋진 용어를 하나 만들어보자.

[윤경호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