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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기고] 신남방정책이 가야할 同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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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때 유럽의 식민지였고 최근까지 유럽과 동북아를 연결하는 통로에 불과했던 지역이 세계의 역동적 성장을 이끄는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구 6억4000만명, 평균연령 28.8세, 경제성장률 5.2%의 아세안과 인구 18억명, 평균연령 26.4세, 경제성장률 6.6%의 남아시아가 바로 그 지역이다.

광대하고 역동적인 이 지역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비전과 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아세안 순방 중 아세안 미래 공동체 비전의 핵심 가치로서 사람, 평화, 상생 번영을 제시했다. 여기에 개방과 포용을 공동체 구성 원칙으로 더하여 이 지역 전체와 외교·경제·문화 협력을 강화해 나가는 신남방정책이라 할 수 있겠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이 거대한 지역을 하나의 전략적 공간으로 통합했다. 일본은 2015년 1100억달러의 '고품질 인프라 기금'을 설립하고 인도와 함께 아시아·아프리카 성장회랑(AAGC)을 제의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의 주력을 인도양 해상 실크로드 건설로 설정하고 있다.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일본과 미국이 견제하는 구도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아시아 순방 중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국 협의체(QUAD)가 개최되었고, 뒤이어 나온 미국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는 중국을 '경쟁자'로 규정했다.

최근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를 방문해 주요 정책연구기관 전문가들과 많은 토론을 하고 돌아왔다. 이번에 만난 전문가들은 강대국의 일방적인 이익 추구나 역내에 전략적인 대립 구도를 만드는 데 강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중국의 부상이 가져오는 불안정 요소와 갈등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추진 과정에 투명성과 공정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하면서 2017년 5월 파키스탄, 네팔, 미얀마가 가혹한 금융 조건과 불합리한 사업 관행을 이유로 수력발전 계획을 취소한 사실을 지적했다. 경제 의존이 주권 침해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있었다. 2017년 12월 스리랑카가 80억달러의 대중국 부채를 변제하기 위해 동남부 '함반토타'항 지분 70%를 11억달러에 99년간 임대한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중국의 부상이 주는 기회를 보고 있었다. 베트남은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겪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중국과 협력하기를 원했다. 인도는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사업이 카슈미르 영토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일대일로 구상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안보적 함의, 예컨대 QUAD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아세안이 중국을 배제한 지역합의체에 들어가는 것을 상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중국과 QUAD 어느 한쪽을 지지한다는 것은 아세안이 두 개로 쪼개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번 출장에서 이 지역 국가들이 강대국들의 전략 경쟁이나 상호 배제가 아니라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지역질서 형성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기를 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대일로 구상이 지리적 연계성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했다면, 인도·태평양 전략은 동북아에 함몰되어 온 우리의 안목을 넓혀 신성장 지역인 동남아와 남아시아를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앞으로 동남아와 남아시아에서 도시화가 대규모로 진행되고 사람들의 생활방식에도 급속한 변화가 올 것이다. 신남방정책은 우리가 비교우위를 갖는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이버 연계성 구축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다. 팽창하는 도시 관리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스마트화를 적극 추진하고, 지역과 지역, 거점과 거점을 연결하여 물자와 서비스가 더 빠르게 흐를 수 있도록 통신망 건설과 전자상거래 체제를 확대해 사람과 사람이 더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가치와 생활방식을 공유하는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조병제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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