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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기자24시] 평창 자원봉사자는 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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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무턱대고 짐을 빼라는 거예요. 너무하다 싶었죠." 강원도 강릉 가톨릭관동대 숙소에 묵고 있는 한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는 지난달 말 황당한 일을 겪었다. 숙소에 짐을 다 풀고 각국 선수단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직위원회 측에서 "다른 인원이 와서 숙소를 옮겨야 한다"며 방을 빼라고 지시한 것이다. 자원봉사자들 내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고, 결국 숙소 이동은 유야무야됐다. 해당 자원봉사자는 "외국인들도 자원봉사하러 많이 왔는데 갑자기 숙소를 옮기라고 해서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웠다"며 "자원봉사자가 봉이냐"고 반문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어느덧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지상 최대의 드론쇼, 최다 선수단 출전, 역대 최다 메달 등 어느 때보다 규모가 화려하다. 그 이면엔 바로 1만5000여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노고가 있다. 숙식을 빼곤 '무일푼'으로 일하는 이들 없이는 하루 수만 명이 찾는 주차장, 매표소 등 핵심 시설을 운영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다. 합숙을 시작한 1월 말부터 '부실 식단'으로 논란이 일더니, 최근엔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의 막말이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 이미 예약된 좌석에 앉지 말라는 자원봉사자의 지극히 상식적인 안내에 대한체육회는 고성으로 맞섰다. 자원봉사자들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봉사하러 왔지, 대한체육회 회장을 의전하러 온 게 아닌데도 말이다.

심지어 외국 사람들도 갑질에 나섰다. 한 자원봉사자는 누구나 알 만한 몇몇 외국 선진국 선수단에서 자원봉사자를 하대했다고 귀띔했다. 가령 본국에서 가져온 자전거 조립을 맡긴다든지, 혹은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는 거다. 모 국가 선수단장이 성추행을 했다는 논란도 있다. 조직위 측은 "신고된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자원봉사자와 함께 식사하며 노고를 치하했다고 한다. 말로만 끝나면 안 된다. 자원봉사자들은 3월 중순 패럴림픽이 끝날 때까지 한 달 더 일한다. 남은 기간 동안 자원봉사자들이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숙식을 비롯해 이들에 대한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한 올림픽 정신을 되새기는 길이다.

[사회부 = 나현준 기자 rhj7779@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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