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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오프라벨` 규제 확 푼다…투여후 승인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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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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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항암제에 대해 허가 외 사용(오프라벨·off-label)이 쉬워지도록 규제 문턱을 확 낮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허용한 범위를 벗어난 항암제라도 암환자들에게 필요하다면 먼저 사용하도록 한 뒤 나중에 승인을 받게 하는 한편 더 많은 의료기관이 오프라벨 항암제를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19일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에 따르면 오프라벨 항암제 허용 범위 확대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구성한 '허가초과의약품 제도개선 협의체'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오프라벨 항암제 제도개선 방안에 대한 협의를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개정안을 만들어 행정예고에 나설 계획이다. 이처럼 오프라벨 항암제 사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한 것은 국내외에서 임상적 유용성과 안전성을 인정받아 널리 사용되고 있는 항암제라면 식약처에서 허가받은 용도(적응증) 외 목적으로도 처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료계와 환자들의 요구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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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식약처 허가 범위를 넘어서는 항암제를 환자에게 투여하려면 서로 다른 분야 전문의 6명 이상이 참여하는 다학제적위원회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상태가 위중해 촌각을 다투는 암환자 입장에서 1개월여의 시간이 소요되는 승인기간이 너무 길고 이 같은 행정 절차를 밟는 동안 치료가 중단돼 피해가 크다는 의료 현장 불만이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강화된 요건을 충족한 일부 병원의 경우 승인받지 못한 약도 암환자에게 먼저 처방·투여한 뒤 나중에 승인받는 방향으로 규제를 풀어 신속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오프라벨 항암제를 처방할 수 있는 기관도 늘어난다. 현재는 다학제적위원회를 구성한 의료기관만 오프라벨 항암제를 처방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한 의료기관도 위원회를 두고 있는 복지부 지정 71개 의료기관의 승인을 받으면 직접 약을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환자 입장에서 어느 병원을 찾든 의사 판단에 따라 오프라벨 항암제를 처방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강희정 심평원 약제관리실장은 "대학병원이 아닌 상급 종합병원은 암환자들을 돌보는 전문의가 있는데도 다학제적위원회를 구성할 만큼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필요한 약을 적재적소에 처방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며 "다학제적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71개 의료기관에 처방 승인을 의뢰하도록 하거나 여러 병원이 함께 공용다학제적위원회를 구성·운영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오프라벨 항암제는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아니어서 기존에 허가를 받은 약품에 비해 값이 비싼 데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부작용 등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처방할 때는 환자 동의를 반드시 받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이때 환자에게 대체의약품 부재 등으로 인해 오프라벨 항암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의학적 근거를 설명하는 한편 비급여 대상인 점을 밝힌 뒤 환자의 동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오프라벨 항암제 외에 오프라벨 일반약제까지 처방 의료기관을 확대할지 여부는 기관 간 시각 차이가 있어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태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은 기존 용도와 다른 적응증에 쓰이는 오프라벨 일반약제는 병원윤리위원회(IRB)를 설치한 184개 기관만 처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가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해야 함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협의가 진전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협의체 관계자는 "식약처 관계자 참석이 저조할 뿐만 아니라 의료계와 환자단체가 허용 범위를 확대하려 해도 '무조건 안 된다'는 자세로 일관해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오프라벨 항암제에 대해서는 허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합의했고 오프라벨 일반약제도 시각이 다른 부분이 있지만 신중하게 풀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가를 받지 않은 오프라벨 의약품을 대거 풀어버리면 의약품 약효와 안전성을 입증하는 임상 절차 등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오프라벨 의약품 처방이 쉬워지더라도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아니어서 고비용이라는 점은 환자에게 여전히 부담이다. 복지부는 소아청소년 및 노인성 질환, 신경·정신계 약물, 희귀질환 약의 경우 오프라벨 의약품을 급여 대상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곽명섭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임상 진행이 어려운 취약군에 대해 오프라벨 의약품이라도 적극적으로 급여화하는 방안을 의료계와 협의 중"이라며 "학회 등의 의견을 수렴해 허가 외 범위에 있더라도 보편적 사용이 인정되면 환자 부담을 줄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용어 설명>

▷오프라벨 : 적합한 약이 없거나 촌각을 다투는 환자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할 때 의료기관이 식약처가 허가한 의약품 용도(적응증) 외 목적으로 약을 처방하는 행위.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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