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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기자의 시각] 어머니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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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윤형준 스포츠부 기자


윤성빈(24)이 금메달을 딴 지난 16일 오후 윤성빈의 어머니 조영희(45)씨는 피니시 하우스 건너편 관중석에 서 있었다. 3차 주행은 떨린 마음에 지켜보지도 못했고, 금메달을 확정한 뒤엔 아들과 눈빛이라도 맞춰보려고 애타게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윤성빈은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그가 관중을 향해 세배 세리머니를 하자 갑자기 그의 앞에 태극기가 등장했다. 이어 '관계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곳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있었다.

윤성빈은 "경황이 없었다. (함께 사진 찍는 분들이) 누군지도 몰랐다"고 했다. 이어서 현장 시상식, 취재진과의 현장 인터뷰를 가졌다. 어머니는 윤성빈을 만나러 피니시 하우스로 왔다. "성빈아, 엄마야." 목소리를 높였지만 윤성빈은 주변 환호성 때문에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빨리 가야 한다'는 얘기만 듣고 움직였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슬라이딩센터는 산(山) 능선을 따라 꼭대기부터 중턱까지 지어졌다. 지형 때문에 칼바람이 잦다. 조영희씨가 칼바람을 헤치고 아들을 만나러 가는 사이, 박 의원은 기자회견을 앞두고 잠시 쉬던 윤성빈과 함께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단둘이 나온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면서 "설날이라 다른 날보다 응원 오는 사람 적을 것 같아서 왔는데 와! 금메달. 윤성빈 장하다"고 썼다. 여론은 폭발했다. 한 네티즌은 "정치인들의 숟가락 얹기 신공(神功)이 또 나왔다"고 기막혀했다. 다른 네티즌은 "차라리 스폰서십 맡은 기업인들이 오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어머니도 만날 수 없던 윤성빈을 박 의원이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박 의원은 이날 그가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인 피니시 하우스 바로 아래에 있었다. 이 장소는 현장 운영을 맡은 평창올림픽조직위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유승민 IOC 위원은 출입이 가능하지만 박 의원은 아니다. 박 의원은 "IOC의 게스트 패스를 발급받아 경기장에 갔다. 그 후 안내받아 이동했다"고 말했다. 게스트 패스는 관람석과 IOC 라운지만 통행을 허용하고 피니시 하우스 바로 아래는 입장할 수 없게 했는데, 박 의원이 '특혜'를 누린 것이다.

어머니는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복도에서 초조하게 기다렸고, 아들이 나오자 그제야 와락 껴안았다.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견하다"고 했다. 박 의원은 뒤늦게 "죄송스럽고 속상하다"고 했다. 정식 출입 자격 없어도 윤성빈 곁에서 환호하는 국회의원과 먼발치에서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린 어머니. 누가 더 속상했을까.

[윤형준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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