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총격범 관련 제보 묵살
"FBI가 빚어낸 비극" 비난 속출
트럼프 취임 후 총기사건 362건
수천명 총기규제 요구 시위에도 트럼프, 정신건강 문제로 치부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고교에서 발생한 대형 총기 난사 사건 범인의 범행 가능성을 경고하는 제보가 잇따랐는데도 학교와 FBI(미 연방수사국) 등 관계 당국이 이를 모두 묵살해 범행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현지 언론이 1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지난 14일 플로리다주 남부 소도시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고교에서 이 학교 퇴학생 니컬러스 크루즈(19·사진)가 AR-15 반자동 소총을 난사해 17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치는 대형 사건이 발생했다. 크루즈는 범행 후 대피하는 학생들 사이에 끼어 학교를 빠져나가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들르는 등 태연히 행동하다 범행 약 1시간 만에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악령의 지시를 들었다"고 진술하는 등 기이한 언행을 보이고 있다.
◇FBI, 범행계획 제보전화도 묵살
AP통신 등은 지난달 초 크루즈의 한 지인이 FBI에 크루즈가 총기로 살인을 계획하고 있고, 이와 관련된 내용의 게시물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했지만 이를 묵살했다고 16일 보도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보가 FBI 마이애미 지국에 전달돼 조사가 이뤄져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며 이를 인정했다. 앞서 지난해 9월 24일 '나는 전문적인 학교 슈터(저격수)가 될 것'이라는 유튜브 메시지가 총격범과 같은 '니컬러스 크루즈'라는 이름으로 게시된 것을 한 블로거가 FBI에 제보했지만 FBI는 크루즈가 누구인지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FBI가 두 번이나 제보를 놓친 것으로 드러나자 비난이 빗발쳤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FBI의 실수로 빚어진 비극적인 결말"이라고 했다. 릭 스콧 플로리다 주지사는 "FBI가 살인자에 대해 행동을 취하는 데 실패한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레이 국장의 즉각 사임을 요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트위터에 "플로리다 총격범이 보낸 그 많은 신호 전부를 FBI가 놓쳤다는 게 너무 슬프다. 그들(FBI)은 트럼프 (대선) 캠페인과 러시아 간의 공모를 증명하려고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고 했다.
학교 책임론도 나왔다.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는 17일 크루즈의 옛 여자친구 등이 크루즈의 위험성에 대해 학교에 제보했지만 학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범인, 18세 되자마자 반자동소총 구매
크루즈의 정확한 범행동기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백인 우월주의 단체로 알려진 '더 리퍼블릭 오브 플로리다(the Republic of Florida)'의 회원이었고 준군사훈련에 참여한 적이 있는 등의 행적이 밝혀졌다. 만 18세가 돼 합법적으로 총기를 구매할 수 있게 되자 AR-15 반자동소총을 구입하는 등 무기에 대한 집착도 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취임 후 총기 난사 362건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총기 사건 아카이브'에 따르면 지난해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이 지난 17일까지 362건에 달했다. 올 들어서만 32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1929명이 숨졌고 3339명이 다쳤다.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총기 규제 요구가 빗발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대국민연설에서 "어려운 정신건강 문제와 씨름할 것"이라고 밝혀 총기 규제 문제에 대한 언급은 비껴갔다.
17일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연방법원 앞에서 열린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집회에 고교생과 학부모, 교사 등 수천명이 모여 '내 친구들을 죽게 하지 말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16일 트럼프 대통령은 브로워드 헬스 노스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부상자를 위문했지만 '총기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뉴욕=김덕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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