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색깔 전쟁'
美법원은 소유권 인정해줬지만 유럽선 "색은 독점적 권리 아냐"
크리스찬 루부탱은 1963년생인 같은 이름의 프랑스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다. 10㎝ 넘는 아찔한 굽도 굽이지만, 루부탱의 강렬한 한 방은 시리도록 붉은 밑창이다. 조수가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을 보고 번득인 루부탱이 힐 밑창에 붉은색을 칠해본 게 시작인데, 25년 넘게 루부탱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다.
많은 기업이 고유의 색으로 브랜드와 기업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려 애쓴다. 보석 업체 티파니는 로빈스 에그 블루(물새알 빛깔)로, 명품 업체 에르메스는 일반 오렌지보다 약간 더 타오르는 듯한 '에르메스 오렌지'로 유명하다. 그 색깔만으로 '티파니' '에르메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색깔에 대한 기업의 집념은 때로 법적 소송으로도 번진다. 유럽은 색깔 소유권을 배제하는 편이고, 미국은 인정해 주는 편이다. 2016년 제과 업체 캐드베리는 영국에서 자사의 보라색 초콜릿 포장지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하려다 패소했다. 그러나 루부탱은 2012년 미국에서 벌어진 라이벌 입생로랑과의 '빨간 힐' 소송에서 밑창 색깔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미국에선 이겼던 루부탱이 최근 유럽에선 '자신의 붉은색'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네덜란드 패션 소매기업 반호렌이 루부탱 빨간색을 밑창에 댄 힐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루부탱이 소송을 제기했는데, 지난 6일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색깔을 포함한 상품의 모양은 특정 브랜드가 독점적으로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종 판정은 네덜란드 법원 몫이지만 반호렌이 이길 확률이 크다. 영국 BBC는 "미국과 유럽의 사법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기업들의 색깔 소유 전쟁의 승자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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