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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일사일언] 한 편 값으로 본 두 편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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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동희 가수·작사가


어렸을 적 잠실에 살았다. 일곱 살부터 스물여섯까지 만 20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골목마다 가게 곳곳 참 많은 추억이 남았다. 그중에서도 동네 유일한 극장이었던 '호수극장'. 작고 허름했지만 딱히 바쁘지 않은 남녀노소의 쉼터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영화 E.T를 보러 처음 이곳에 간 날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도 사람들 모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또 한 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이래도 되나' 안절부절못하면서도 함께 영화를 훔쳐봤던 난 나중에서야 이곳이 한 편 값으로 두 편 영화를 볼 수 있는 '동시상영관'이란 걸 알았다. 이후 이곳이 좋아져 '그렘린'도 '인디아나 존스'도 모두 쪼르르 이곳으로 달려가 봤다.

다만 딱 하나 불만이 있었다. 매 영화 상영 직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대체 이게 영화랑 무슨 상관일까 생각하며 애국가가 나와도 혼자만 의자에 누운 듯이 앉아 버텼다. 그럴 때마다 필름 영사실에서 준법정신 투철한 백발의 프로 영사기사 할아버지가 직접 객석까지 내려와 면전에서 나를 혼내곤 했다.

이후 앞머리 무스 칠 좀 하는 중학생이 돼서는 귀여운 작품들 대신 라붐, 엔들리스러브,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영화를 접했다. 심장이 간질간질하게 빨리 뛰고 부서질 듯 아릿한 감정이 뭔지 차츰 느끼기 시작했다. 슬픈 장면을 보고 몇날 며칠을 울고, 안타까운 엇갈림의 세계, 혹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들에 설레기도 했다. 아직도 사랑이란 말을 들으면 그때의 떨리고 순수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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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수 '검정치마'의 '헐리우드'란 노래를 들었다. "넌 영화 속에 살고 그런 너를 지켜보네. 조명을 내려줘요. 하얀 마음 때묻으면 안 되니까 사랑해줘요." 한동안 잊고 살았던 호수극장이 되살아났다. 현실에선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이 아직 그곳에는 살아 있다고 노래한 걸까. 그렇다면 나도 그 안에 살고 싶다. 허름했지만 달콤했던, 그 옛날 동시상영관의 영화 속에서.

[조동희 가수·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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