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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최보식이 만난 사람] “왜 惡만 드러내는가… 살아간 사람의 성취 없이 이뤄진 세계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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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문열 단독인터뷰]

”너무 많이 화를 내면서 내가 살아오지 않았나

불평하고 화를 내려면 그런 자격 있어야 하는데“

”현 정권은 조정 안 될 일을 조정해보겠다고 나섰고 북한에 매달리고 있다

그 기술도 신통찮아 보여”

소설가 이문열씨가 “나를 임명한 사람들이 ‘블랙리스트’로 감옥에 들어갔는데 남아 있을 명분이 없다”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직에 사의를 표명한 뉴스를 보고, 그와 통화했다.

"이름은 거창해보이나 실제로는 일 년에 서너 번 회의 나가는 자리입니다. 거마비로 20만원씩 받는 게 전부고요. '블랙리스트'라는 게 바보 같은 짓인데…. 적극적으로 불리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정부 지원을 안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시행해야 하는 '블랙리스트'였다면 일 년에 260억원의 재원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내려왔어야 했는데…."

조선일보

이문열씨는“5·18을‘혁명’이라 하고 헌법 전문에 들어가는 건국 정신이 되면 우리가 알던 세상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인복지재단은 '블랙리스트'와 무관했다는 겁니까?

"내가 확인해봐도 받은 게 없어요. 가령 문단(文壇)에서 이념 성향으로 나누면 절대다수는 좌파적으로 볼 수 있는데, 어떻게 절대다수를 블랙리스트에 올릴 수 있습니까. 공무원 중 누군가가 어름하게 그런 걸 만들어봤는지 모르나 현실적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과장 내지 과잉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적폐 청산'에서 통용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는 요즘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할 말이 꽉 차있는 것 같았다. 약속한 날짜에 경기도 이천의 집을 찾아간 시각은 오전 10시 반이었다. 그는 부스스한 얼굴로 맞이했다.

"어제 자정에 시작해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와인 한 병에 맥주 두 병 얹어서…."

―후배 작가들이 찾아왔습니까?

"20년 전부터 거의 혼자 마십니다. 사람들이 안 옵니다. '이문열'이라면 피해야 된다고들 여기니까요."

―김대중 정부 시절(2001년) '책 장례식'을 겪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해소되지 않았습니까?

"내 책을 태우는 장례식 주도자들은 다분히 운동권적이었고 소수였지만, 지금은 나에 대한 부정적 낙인(烙印)이 일반화됐습니다. 더 고약해진 거죠."

그는 1998년 경기도 이천으로 옮겨왔다. 책 인세(印稅) 수입으로 넓은 땅을 사들여 작가 지망생들을 기르는 '부악문원(負岳文苑)'이라는 숙사를 지은 것이다. 하지만 '책 장례식'을 겪고서는 문을 닫았다. 그 뒤에는 정부 및 지자체 지원을 받아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스(집필 공간)로 운영해왔다.

"작년부터 정부 지원이 끊겨 레지던스도 문 닫게 됐습니다. 건물의 유지·보수도 어려워졌고요. 내가 나이를 먹어도 좌충우돌해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으니…."

―제가 복학했던 1980년대 초반 학생회 초청으로 서울대에서 강연하는 이 선생을 봤습니다. 그때는 박수를 받았는데요.

"신선했겠지요. '사람의 아들' 등 존재론적인 문제를 다뤘으니까요. 의식적으로 월북한 아버지와의 거리를 두려고 했지요. '영웅시대'가 이념과 관련된 내 가족사를 다룬 작품인데, 처음엔 보안대에 의해 불온 서적으로 찍혀 납본필증도 안 나왔습니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 '영웅시대'를 보면서 이념 학습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뒤늦게 '그게 아니구나'라며 이 작품을 읽지 못하게 했지만요."

―세월이라는 게…. 어느 날 작가의 이미지가 극단으로 바뀌었고 보수 반동처럼 몰렸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부터 나를 공격 표적으로 삼는 기미가 보였는데, 그때만 해도 열 중 한 명꼴이었을 겁니다. 내 앞에서 깃발 들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어도 전체 독자 숫자에 비하면 얼마 안 된다고 봤지요. 뒤에서 가만히 있는 다중(多衆)을 내 편으로 봤습니다. 어긋났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됐지요."

―왜 김영삼 정부 때 이념적 불화(不和)가 빚어진 겁니까?

"보수(保守)의 가치를 드러내는 '근대화·산업화 세력'이라는 용어는 3당(黨) 합당으로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생겼습니다. 보수 세력과 합쳐 권력을 쥐려면 앞 시대에 대한 승인을 해줘야 했으니까요. 김영삼이 이런 절충을 시작할 때 정(正)과 반(反)이 안 부딪히고 자연스럽게 합(合)에 이르는, 다시 말해 근대화·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결합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걸어봤습니다. 하지만 김영삼은 임기 중반에 다른 정치적 문제로 '역사 바로 세우기'를 내세워 엎어버렸습니다. 얌체 같은 짓이었지요. 내가 참다 못해 보수 가치의 대변자로 나서게 된 겁니다."

―정치와 사회 현실에 너무 개입하면서 스스로 코너에 몰린 측면이 없습니까?

"우리가 살아온 삶 속에서 어떤 가치는 지켜줘야 한다는 걸 인식시켜 주려고 했습니다. 내가 '보수'라고 커밍아웃하자 저쪽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던 것이지요."

―선생의 작품에는 지나간 날에 대한 아름다움, 유교적 질서나 복고적 감수성이 주조를 이뤘습니다. 젊은 독자들에게는 구시대적 이미지로 비칠 수도 있겠지요.

"나쁘게 말하면 '기득권'이 되겠지만, 살아간 사람의 성취 없이 만들어진 세계는 없습니다. 앞선 사람들도 자신의 삶에서 승인받고 싶어 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나쁜 짓을 하고 해악을 끼치며 사익을 취했을 수도 있겠지만, 세상은 분명히 전진해왔는데, 우파 보수가 그런 악의로만 살아왔다면 어떻게 세상이 계속 전진해올 수 있었겠습니까. 이들이 세상을 개선 발전시키려고 해왔던 노력과 성의도 기억해야지, 왜 악(惡)만 드러내는가, 그걸 무시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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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프랑스혁명에 반대하며 '보수주의'를 탄생시킨 영국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관점(觀點)이 그렇습니다. 진보와 보수는 결국 제도와 관습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로 나눠지는 것 같습니다. 진보는 인류 역사의 출발선으로 되돌아가 시작하려고 하고, 보수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것을 활용해야 한다는 쪽이겠지요.

"세상이 바뀌니 지난 보수 정권은 악(惡)의 덩어리라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부정을 하지 않으면 권력 획득을 하지 못하지요. 사실 진보는 과거의 제도를 대부분 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성취 위에 살면서 그 과실만을 싹 빼먹고는 매도하는 것에 대해 나는 반감이 있지요."

―요즘 신동아지(誌)에 1980년대를 다루는 장편소설 '둔주곡'을 연재하고 있더군요.

"1980년대는 오늘을 만들어낸 단초가 된 시대입니다. 그전에도 좌파와 학생운동이 있었지만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5·18과 전두환을 어떻게 보느냐가 역시 쟁점이 되겠지요? 호남이라는 지역과 결합돼 있는 5·18이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시간이 흘러도 객관적인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5·18을 '혁명'이라 하고 헌법 전문에 들어가는 건국 정신이 된다면 우리가 알아왔던 세상과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역사에서 '악역(惡役)'이 있었을 때 그 개인의 악함·권력욕만 따졌지, 시대 상황의 불가피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이걸 냉정하게 쓸 겁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당연히 그렇게 됐어야 한다는 잣대를 대면 과거에 이뤄진 것들은 대부분 부정될 수밖에 없지요. 소설이라는 형식이라도 장차 논란이 되겠군요.

"요즘 분위기에서 불리(不利)와 압박에 대해선 별로 걱정이 안 됩니다. 다만 작품이 완결됐을 때 더 변해 있을 세상입니다. 그런 억압을 안 가해도 세상에서는 '이문열 책은 안 봐'라고 할지 모르는 공포가 있습니다."

―재작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을 때 본지 기고문에서 '아리랑 축전 같은 촛불 집회'라고 묘사해 엄청 욕을 먹었지요? 젊은 세대의 자발성과 달라진 소통 방식을 이해 못 한 게 아닌가요?

"촛불 군중은 저쪽 편에서 상시적으로 있어 왔던 군중이고, 그걸 거리로 이끌어냈던 것이지요. 뭔가 작동한 것이라고 여전히 봅니다. 촛불 시위 당시 정연한 촛불 끄기 장면을 보고 으스스한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까."

―당시 기고문에서 '보수가 죽어야 한다'는 내용은 보수 진영의 반발도 불렀지요. 결국 보수가 죽어 현 정권이 탄생됐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이 저렇게 사람을 못 쓰나, 어떻게 저렇게 들어앉아 있나, 내 속에서 천불이 났습니다. 그때 내가 말한 보수는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친박 중심의 보수였습니다. 그게 살아남아서 저러니 기가 막혔지요. 새롭게 태어나려면 죽어야 한다, 죽어서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정권을 말아먹고는 책임져야 할 정치인들 중에서 죽은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재수 없는 여왕(女王)만 감옥에 있지…."

―현 정권은 적폐 청산 혹은 정의(正義)라는 이름으로 과거 보수 정권을 뒤집고 있습니다. 과거를 이렇게 대하는 게 옳은가, 지금까지 알아온 내 상식과 가치가 틀린 것인지 돌아볼 때도 있습니다.

"저쪽이 가는 길은 전혀 낯선 게 아닙니다. 종착점은 너무 빤히 예상이 됩니다. 너무 끔찍해 의식적으로 추리를 안 하려는 것뿐이지. 요 며칠간에는 올림픽을 갖고 도깨비놀음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반도 위기 상황은 분명한데 처방은 확연하게 갈립니다. 현 정권은 북한과의 대화에 매달리고 있지만, 미국은 강력한 제재에 이은 선제타격 카드까지 만지작거립니다.

"어느 쪽이든 모두 딜레마이고 최악의 상황을 추리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로서는 어떤 편에 서느냐 선택에 몰려있습니다. 그런데 현 정권은 조정이 안 되는 일을 조정해보겠다고 나섰고 북한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 기술도 신통찮아 보입니다. 이 또한 허구이고, 시간이 가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게 뻔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화가 나고 막막한 심리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어느새 일흔 노인이 됐다. 그 나이에 꽃중년처럼 행세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에게는 오래된 시간의 느낌이 있다. 나잇값을 정직하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내가 너무 많이 화를 내고 있지 않았나, 사실 불평하고 화를 내려면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도 과거 20년 동안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는데, 내게 그런 자격이 있나 싶어요.”

[최보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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