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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내 청춘의 '큐'를 잡고… 그 때로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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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와 당구의 부활] [上]

"역사상 가장 활동적 세대의 향수" 친구·부부·가족 함께 당구장으로

두뇌 운동 효과 체스에 버금가

금연, 카페 스타일 당구장도 한몫

설 연휴 막바지인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당구장. 중년의 신사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더니 편을 갈라 당구봉을 잡는다. "허허. 이 사람이 장인 앞에서라고 봐주는 것도 없구먼!" 사위 3명과 함께 당구장에 온 김영훈(62)씨는 "예전엔 서로 만나기만 하면 서먹해서 딴 데 보고 앉아 있었는데, 함께 당구장에 온 뒤로부터 가족 간에 대화가 생겼다"며 "상대와 뒤서거니 앞서거니 내기 당구를 즐기니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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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큐52 당구장에서 맹연습 중인 송파당구연맹 5060세대 회원들. 당구장 금연법이 시행되면서 부부 동반 고객도 크게 늘었다. /성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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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직전인 지난 13일 오전 찾은 서울 송파구 문정동 법조단지 내 '큐52' 당구장에선 중년 부부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명절 스트레스 같은 건 느낄 새가 없었다. 지난해 문을 연 이 당구장은 송파당구연맹에 가입한 시니어 회원들이 오전마다 찾아와 당구를 즐긴다. 장능섭 송파당구연맹 부회장은 "회원 1000명 대다수가 은퇴 후 건강관리와 취미생활을 위해 당구를 치는 55세 이상 시니어들로, 월 회비 3만원만 내면 연맹이 임대한 당구장에서 하루 3시간씩 마음껏 당구를 칠 수 있다"며 "오는 3월 3일 실시될 당구장 금연법이 지난해 12월부터 계도 기간에 들어가면서 부부 동반 회원이 급격히 늘었다"고 했다.

은퇴 시기를 맞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들이 당구장 부활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1970~80년대 경제성장기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산업 역군'이자, 전문가들은 "역사상 가장 활동적이고 소비 욕망이 충만한 60대"라고 말한다. 당구는 이들의 젊은 시절 거의 유일한 오락이었다. 치열했던 시절의 향수를 더듬으며 당구장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서울시당구협회 유진희 부회장은 "서울당구학교를 비롯해 각종 당구 아카데미를 찾는 5060세대가 절반이 넘는다"며 "승부욕을 자극하면서도 게임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날씨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것도 매력 요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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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도 여럿 생겨나고, 당구장 벽에 고교 동창회 등의 플래카드가 붙은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은퇴 후 수필 작가로 활동하는 김종억(63)씨는 "이전에는 골프와 테니스를 주로 즐겼는데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은퇴 후에는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부담되더라"며 "당구는 저렴해서 하루 2만원이면 친구들과 실컷 즐길 수 있어 '가성비'(가격 대비 효용)가 뛰어나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당구장은 '뜨는 업종'으로 분류됐다. 2014년 사업자 1만4629명이던 것이 2017년엔 1만8258명으로 3년 만에 28%나 증가했다.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으로 오는 3월 3일부터 당구장이 금연 구역에 포함되면서, 담배 연기 자욱한 '너구리굴'이란 과거의 오명도 벗게 됐다. 카페 스타일의 깔끔한 당구장이 속속 문을 열어 '데이트 코스'로도 각광받는다.

당구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력은 게임비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두뇌 회전과 기술 숙련이 필요한 운동이다. 스포츠 의학 전문의인 조성연 하늘병원장은 "당구는 1시간에 2~3㎞를 걷는 효과를 내는 유산소 운동인 데다 대표적 두뇌 스포츠인 체스에 버금가는 집중력을 키워준다"며 "근력 운동뿐만 아니라 뇌 노화 방지 효과도 있어 중년 이상 시니어들에게 특히 추천할 만하다"고 했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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