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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30년간 체조선수 156명 추행·성폭행…美 대표팀 前주치의 징역 1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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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 눈물의 법정 증언

"몹쓸짓 하며 커튼 뒤 엄마랑 얘기" "남자 손만 봐도 덜덜 떠는 고통"

판사 "걸어서 감옥 나갈 자격없어"… 신고 묵살한 체조협회장 등 줄사퇴

전 미국 국가대표 체조팀 주치의가 어린 여자 선수들을 30여년간 추행·성폭행한 혐의로 최대 175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초 법조계에서 '25년' 정도로 예상한 형량이 사실상 종신형으로 늘어난 데는 피해자 156명이 일주일간 법정에서 이어간 '증언 릴레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 미시간주 랜싱법원은 24일(현지 시각) 체조 국가대표 팀 닥터였던 래리 나사르(54)에게 상습 성폭행 혐의로 가중처벌을 선고했다. 선고가 끝나자 이를 지켜보던 피해자와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터뜨리고, 발을 구르며 박수를 쳤다.

정형외과 전문의 나사르는 1986년부터 국가대표들을 치료하다 명성을 얻어 공식 팀 닥터가 됐다. 2014년 그가 교수로 있는 미시간주립대 여학생들이 '나사르에게 추행당했다'고 처음 신고했고, 이듬해 선수들의 비슷한 증언들이 지역 언론에 보도됐지만 모두 묻혔다. 나사르는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6년 리우올림픽서 미국 여자 체조팀 '선전'의 최대 공로자 대접을 받았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매카일라 마로니(22)가 "13세 때 전지훈련에서 나사르에게 처음 당했다"는 폭로 글을 올렸다. 할리우드의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Me too)'에 힘입었다고 했다. 여기에 알리 레이즈먼, 개비 더글러스 등 2020년 도쿄올림픽 상비군의 '미투' 증언이 이어지면서 미 체육계가 발칵 뒤집혔다. 나사르는 지난해 11월, 80여명에 대한 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

나사르는 이번 공판 전까지 "어린 선수들이 치료 행위와 오해한 것" "경기력이 떨어지니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나를 이용한다"며 여론전을 펼쳤다. 이에 담당 판사인 로즈메리 아킬리나는 지난 18일부터 피해 여성 80여명을 모두 법정 증언대에 세우기로 했다.

체조 선수뿐 아니라 그에게 진료받은 수영·축구·배구 선수 등 10~30대 여성들이 쏟아낸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나사르에게 '진료'를 받은 후 출전한 경기 중 내내 성기가 쓰라렸다" "올림픽 스타가 되려면 그를 믿고 따라야 한다고, 나사르도 체조협회도 부모님도 나를 '세뇌'했다" "날 진료대에 눕히고 몹쓸 짓을 하는 동안, 나사르는 커튼 뒤의 우리 엄마와 종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직까지 남자의 손만 봐도 치가 떨린다"…. 6세 때부터 10여년 동안 추행당한 선수, 첫딸을 낳은 뒤 '이대로 거짓을 덮고 갈 순 없다'고 결심했다는 전직 선수, 성폭행 충격으로 끝내 자살한 선수의 어머니가 출석해 오열했다.

'눈물과 분노의 증언'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숨어 있던 피해자들도 합류해 증인은 총 156명으로 두 배가 됐고 증언 기간도 일주일로 늘어났다. 여성인 아킬리나 판사는 수치심으로 입이 얼어붙은 증인에겐 "고통은 여기에 털어놓고, 나가서 위대한 일을 하라"며 격려했다. 뉴욕타임스는 "미 법정 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카타르시스의 장'이 펼쳐졌다"고 전했다. 수년간 선수들의 신고를 묵살해온 미 체조협회 회장과 이사진, 미시간주립대 총장 등이 지난 며칠 새 줄사퇴했다.

아킬리나 판사는 24일 최종 선고에서 나사르에게 "당신은 다시는 감옥 밖으로 걸어나갈 자격이 없다. (의사라도) 당신에겐 내 개도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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