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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팀원서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 나는 열일곱살 기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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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청소년 기업가체험 프로그램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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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유치서, 스왓(SWOT) 분석, 판매전략, 시제품…. 교실에서 쉽게 쓰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창업 좀 해본’ 청소년들은 학교 현장에서 서로를 시이오(CEO), 마케팅 팀장 등으로 부르며 이런 ‘업계 용어’를 익숙하게 다룬다.

지난 10~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진로교육 페스티벌’에는 기업가를 꿈꾸는 많은 청소년이 모였다. 지난해 8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하 직능원)이 주관하는 ‘청소년 창업경진대회’ 예선을 통과한 뒤 본선에 진출한 60여개 팀이 투자 설명회, 제품 시연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모두 직능원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기업가체험 프로그램’(YEEP·이하 옙)을 기초로 창업을 했다.

투자유치, 스왓분석, 시제품 등

기업 실무 용어부터 배워가면서

소비자→생산자 경험하는 청소년들

일상 불편함에서 아이디어 도출

퍼실리테이션 등 의사결정법 익히며

광고전략 세우고 사회 보는 눈 키워

기업 역할 고민, ‘착한 기업’ 만들기도


‘매력적인 중재법’ 배운 뒤 회사 경영

‘회사를 직접 만들어보는 교육이 있다’는 교사의 말에 아이들은 손사래부터 치기 바빴다. 학교·학원 오가기도 바쁜데 어른들이 다니는 회사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는 게 이유였다.

양주백석고등학교 정현석 교사는 이런 아이들에게 옙에 대해 설명했다. 교과과정 및 활동시간에 적용할 수 있는 교안과 워크북이 있고 국내외 창업 사례, 기업가정신(이윤 추구는 물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기업가가 마땅히 갖춰야 할 자세) 등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2학년 방은혜양은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 만들기’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현재 방양은 창업동아리 ‘운ː김: 사람들이 있는 곳의 따뜻한 기운’(이하 운김) 시이오다. 운김의 창업 아이템은 ‘맞춤형 메시지 캔들’이다. 방양은 “‘학생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거듭해 창업 아이템을 선정했다”며 “처음 시작할 때는 창업을 먼 미래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이젠 ‘나도 일의 주인이 되어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살아오다가 제품 만들어볼 생각을 하니 관점이 변하더라고요. 친구들과 회의를 통해 최신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는 작업부터 했습니다. 대화 단절, 스몰 럭셔리(작은 사치), 마음 표현 등을 기업 핵심어로 정한 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물건’이라는 최종 콘셉트를 확정했어요.”

메시지 캔들의 제품명은 ‘온달’이다. ‘온기로 마음을 전달한다’는 문장의 줄임말. 파라핀 왁스로 모양이나 글자를 새긴 ‘모양 초’를 만들고,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시온안료’를 넣은 젤 왁스를 모양 초 겉에 두른다. 소비자가 원하는 문구나 모양을 3D프린터로 출력?제작하면 기념일 선물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방양은 운김을 운영하며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 기법의 중요성도 체감했다. 퍼실리테이션은 기업·조직 등에서 진행자가 회의를 이끌어가는 토론 방법을 말한다. 시이오, 사원과 팀장 등으로 구성된 운김을 이끌면서, 회의 시간에 의견을 중재하고 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됐다. 방양은 “창업해보기 전에는 ‘회의는 모여서 말하는 것’이라는 소극적인 개념으로 알고 있었다”며 “창업 교육을 받으며 ‘또래 퍼실리테이션’ 방법론을 알게 됐다”고 했다. “경청하기, 매력적으로 중재하기, 세련된 발표 방식 등을 배우며 회사를 총괄하는 기업가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중용’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 지도교사는 “학생들이 기업 이름 정하기부터 소비시장 분석 등 창업 경험을 통해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익혔다”며 “시장이나 마트에서 누군가 만들어놓은 물건을 사는 수동적인 소비자 입장을 넘어서, 제품을 개발해 이윤을 내보는 기업가의 시선을 경험해봤다”고 했다. “학생들이 창업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레 나옵니다. 수익의 일부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는 방식까지 고민하면서 ‘착한 경영’에 대한 토론까지 하더군요.”

시이오로서 시장 분석해보며 진로 찾기도

“샴푸통 바닥에 남은 건 펌핑해도 안 나오잖아. 매번 통을 거꾸로 세워서 쓰려니 참 불편해. 방법이 없을까?” 예전 같으면 통 바닥에 남은 샴푸를 쓰려 할 때 신경질을 냈겠지만 이젠 이런 불편한 상황이 생길 때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개선 방법부터 찾는다. 인천 문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마예진양 이야기다.

마양은 ‘천지창조-오디(OD) 2017’(이하 오디)의 시이오다. 1학년 때 마케팅팀 사원으로 ‘입사’해 올해 오디 운영 총괄을 맡았다. 초고속 승진 신화의 주인공인 셈. 오디는 매주 1회 정기적으로 모여 신제품 개발 회의를 꾸준히 하고 있다.

마양은 “사실 창업 아이템을 선정할 때 만들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욕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집중해봤다”며 “욕실에서 불편한 점 등에 대해 브레인스토밍하다가 팀원들과 ‘내용물이 나오지 않는 샴푸통’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했다. “회의 결과 ‘뚜둘통’ 아이디어가 채택됐어요. ‘뚜껑이 두 개인 통’의 줄임말입니다. 샴푸통 바닥에도 뚜껑을 만들어, 굳이 세워놓지 않아도 남은 내용물을 알뜰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이죠.”

‘4P 분석’, ‘STP 전략’ 등 경영 기법을 통해 시장 분석을 하며 진로도 바뀌었다. 마케터로 시작해 시이오가 되어 보니, 본래 진학 목표였던 광고?홍보학보다 경영학이 적성에 더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지난 11일에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진로교육 페스티벌에 참가해 경영자로서 ‘피칭’(pitching)도 직접 했다. “현재 뚜둘통은 시제품 단계거든요. 소비자들에게 저희 제품을 소개하고 투자 유치를 받기 위해 스티브 잡스처럼 피피티(PPT)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일종의 투자 설명회였는데 반응이 꽤 좋았어요.”

정준교 지도교사는 “학생들이 창업과 제품 개발을 해보는 과정에서 광고 포스터 제작, 회사 소개서를 써봤다. 피칭을 준비하면서 주주총회의 개념부터 투자가 실제 이뤄졌을 때 협조 기업 발굴하는 법도 알게 됐다”고 했다.

‘비전문’ 작성 뒤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

기업가체험 프로그램 과정에는 ‘비전문 작성하기’도 있다. 자신의 창업 아이디어가 이웃과 사회, 환경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도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진행한다. 서울 대신중학교 2학년 전서우군은 “평소 코딩과 사물인터넷(IoT)에 관심이 많았다. 비전문을 작성하면서 이런 관심을 혼자만의 것으로 남겨두는 게 아니라 사회에 도움 주는 방향으로 확장해보게 됐다”고 했다. “졸음운전으로 사상자가 나왔다는 사회면 뉴스를 보고 안타까웠어요. 기계에 대한 관심을 ‘교통사고 줄이기’라는 비전으로 확장해봤습니다.”

전군은 명령어를 입출력한 대로 동작을 선보이는 코딩 기술과 ‘졸음운전 방지’라는 목표를 접목했다. 그렇게 ‘스마트 체어’를 구상하게 됐고, 뜻 맞는 친구들과 ‘홈넷 기어’(Homenet Gear)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원형 방석에 12개 압력 센서와 열수축튜브를 부착해 바르게 앉을 수 있도록 돕는 제품입니다. 스마트 체어에 모니터도 연결했어요. 자세가 흐트러지면 경고음도 나오고, 앉은 자세에 대한 데이터가 누적?기록됩니다. 탈부착도 가능해 차량은 물론 집과 학교에서 다 쓸 수 있고요.”

창업 뒤 시장 분석과 소비자 수요 조사를 진행해보니 또래 친구들 반응이 좋았다. 시제품을 만들어 현장 설문도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청소년들이 ‘앉은 자세’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박후서 지도교사는 “학생들이 마케팅 회의를 통해 제품 판매 전략을 고민하면서, 이 제품이 졸음운전 사고는 물론 자세 교정용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냈다”며 “창업 뒤 제품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뉴스도 챙겨 보고, 소비자 연구를 해보면서 자연스레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고 했다. “기업가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창업 미션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창업 동아리 활동뿐 아니라 아이디어에 각을 잡아가며 다듬어보면 특허까지 낼 수 있죠. 스스로 기업을 만들어 학생이 아닌 시이오로서 사회 구성원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며 생활에 활력을 찾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어린이 시이오 되기? 어렵지 않아요”



청소년 대상 창업교육 지원 창구

용돈 받아 쓰는 소비자 입장에서 기업을 만들어본 생산자의 입장이 되면 경제 교육도 수월해진다. 아이들의 생각이 ‘돈 모아서 갖고 싶은 것을 산다’에서 ‘회사를 만들어 판매할 것을 직접 구상·제작해본다’로 바뀌니 학습·생활면에서도 자기주도성이 생길 수 있다.

기업가정신 및 청소년 창업 교육으로는 2002년 중소기업청이 시작한 ‘비즈쿨’을 비롯해 교육부 주도 청소년 기업가 체험 프로그램 등이 있다. 비영리법인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는 아쇼카재단의 체인지 메이커, 아산나눔재단의 히어로스쿨 등이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로체험학습센터 김효정 연구원은 “청소년 기업가체험 프로그램(YEEP·이하 옙)을 통해 창업과 협업 관련한 54개 미션을 수행해보며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다”며 “기업 설립 절차와 사회에서의 역할, 이윤 창출과 분배 구조 등을 배우며 시야도 넓힐 수 있다”고 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도입과 창의적 체험활동, 고교 자율동아리 활동 등과 관련해 ‘또래 창업 교육’ 등에 대한 문의가 많습니다. 옙에서는 온·오프라인 융합형 수업 및 기술, 진로 등 교과 연계형 기업가정신 교육을 합니다.”

옙은 전국 중·고등학교 창업 동아리라면 자격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다. 누리집(www.yeep.kr)에서 프로그램 신청 뒤 동아리 필수 미션 12개를 포함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활동하면 매년 열리는 ‘청소년 창업경진대회’에도 나갈 수 있다.

인천 문일여고 정준교 교사는 “교실 속 수업은 주로 교사가 주도하지만 옙의 지도교사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며 “창업 아이템 선정부터 회사 및 제품 이름 정하기, 홍보물 제작과 사회공헌사업 디자인하기, 투자 유치하고 시제품 생산하기 등 모든 과정이 ‘학생 시이오(CEO)’와 ‘학생 직원’의 협업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초등학생들이 기업가정신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창구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고 창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케이-스타트업’(이하 스타트업) 누리집(www.k-startup.go.kr)의 ‘창업교육’ 항목에 들어가면 ‘우리는 어린이 시이오’ 게임이 있다. 친환경 유기농업회사, 대체에너지 자동차 공장, 인터넷 보안 지킴이 회사 등 아이의 적성에 맞게 선택해 가상 기업을 운영해보며 게임을 통한 창업 교육을 할 수 있다.

스타트업 누리집에서는 1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약 500여개 ‘청소년 비즈쿨’ 참가 학교도 모집한다. 비즈쿨 지정·운영 때 기업가정신 및 창업·경제교육이 진행되고 담당교사 연수 및 전문가 특강 등을 지원해준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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