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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원점 재검토’?…딜레마 빠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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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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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유아교육을 놀이 중심으로 개편하고 유치원·어린이집의 영어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금지하려던 정부가 반대 여론이 커지자 “시간을 두고 의견수렴을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교육정책에 대한 정부의 일관성 없는 태도가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달 27일 교육부가 ‘유아교육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촉발됐다. 교육부는 누리과정(3~5살 유치원·어린이집 공통교육과정)을 놀이 중심으로 개편하기로 하고 유치원에서 제공하는 학습 위주의 영어 특별 프로그램을 규제하기로 했다. 아울러 초등학교 1·2학년의 방과후 영어수업이 공교육정상화법(선행학습금지법)으로 인해 올해 3월부터 금지될 예정이다 보니, 교육부는 유치원 영어수업도 함께 규제할 방침을 세웠다. 교육부는 보건복지부와도 협의해 영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어린이집도 함께 규제하기로 협의했다. 아동의 발달과정상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공교육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이전에 영어 수업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게 애초 정부 방침이었다.

하지만 영어수업에 대한 정부의 이런 정책 기조는 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와 초등학교 1·2학년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학부모들은 공교육에서 제공하는 저렴한 방과후 수업과 유치원·어린이집 특별활동 프로그램만 규제하면, 오히려 학원 등 고액의 사교육기관을 찾을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교육 불평등만 촉발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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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개 교육 시민단체들은 교육부의 유치원 등 영어 특별활동 규제 정책과 관련해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연대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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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유치원, 어린이집과 달리 사교육기관은 정부가 규제할 근거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최은순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은 “정부의 정책 방향은 맞는데 지금의 반쪽짜리 법으로는 저렴한 공교육만 금지할 수 있고 사교육은 금지하지 못한다. 비싼 돈 주고 사교육기관에 보내야 하니 가계부담만 늘어나 학부모들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여론이 좋지 않다 보니 교육부는 기존 태도에서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15일 “이미 유치원에서 영어 프로그램을 금지한 교육청도 있기 때문에 정책 기조가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다만, 좀더 유연하게 가기 위한 여러 방법을 폭넓게 고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교육에서 초등학교 3학년 이전에는 영어 수업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정책 방향에는 변화가 없지만, 규제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시작할지는 아무런 방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규제 방침을 미루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것이 학부모들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는 “교육정책에 대한 사회적 혼란이 클 때 새 정부가 교육철학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학부모들을 설득하면 불안하지 않을 텐데 방관하며 여론의 눈치를 보다 보니 갈등이 커진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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