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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지역이 중앙에게] 강은 이미 해답을 내놓았다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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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차를 타고 낙동강변을 지날 때면 부질없는 생각만 했다. 이미 예견된 재앙을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를 애써 외면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려오는 4대강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당시 취재기자로 목격했던 두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1. 2010년 여름, 낙동강 달성보 건설현장. 한국 환경단체 활동가들의 안내로 일본의 하천 전문가들이 사업현장을 둘러봤다. “도대체 왜 정부가 이 강에다 대규모 보를 동시에 8개나 지을까요?” 하천공학자인 이마모토 히로타케 교토대 명예교수가 정말 궁금한 듯 물었다. “처음에는 운하를 건설하고 싶어 했는데….”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이제야 알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자원 확보나 수질 개선, 홍수 예방 목적으로 이렇게 대규모 준설을 하고, 한꺼번에 많은 보를 짓는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운하를 만드는 과정이라면 이해가 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운하는 만들지 않았으니, 4대강 사업은 22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세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자본의 쓰레기들’이라는 기사에서 4대강 사업을 10개 사례 가운데 세 번째로 꼽았다. 한마디로 돈만 많이 들고 쓸모없는 사업이라고 평했다.

#2. 2010년 가을, 대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 당시 심명필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장(그 자리에 있던 공무원들은 ‘장관급’인 그를 꼬박꼬박 ‘장관님’이라고 불렀다)은 기자들에게 ‘이 사업 반대하는 사람들 명단을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사업이 성공하면, 얼마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는지 반성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평소 4대강 사업에 앞장선 학자들과 관료들의 면면을 기록해두고, 그들의 부역행위가 자연과 미래 세대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오던 터였다. 저들도 정반대의 이유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싶어 놀랐다.

그런데 최근 ‘4대강 반대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작성된 사실이 드러났다. 진선미 의원실이 공개한 2012년 환경정보평가원 발간 ‘4대강, 국책사업 반대행위 단체 및 인명사전’. 그의 말과 이 인명사전 사이의 관계를 알 수는 없으나, 허투루 한 말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국정원이 보수단체에 예산을 지원하고 리스트 작성을 발주한 것이라는 의혹마저 사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정부가 양심적인 학자와 환경운동가, 종교인들을 낙인찍어 옥죄어온 사실을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남긴 셈이다. 진상을 밝혀야 할 부분이다.

이명박 정부는 ‘강 살리기 사업’이라며 내세웠던 목적 가운데 어느 하나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채 강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은 언제부턴가 강이 파괴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볼 뿐이었다.

이런 인간들에게 등을 돌릴 만도 하건만, 강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있다. 5년 만에 낙동강 일부 보의 수문을 열어 물길을 터주자, 강은 기다렸다는 듯이 흐르고 흘러 모래톱을 펼쳐 새들을 불러 모은단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은 감격하면서 이 기쁜 소식을 글로 전했다. “새들이 춤을 춘다. 덩달아 낙동강도 기뻐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했다. 삽질이 시작된 이래로 10년간 구석구석을 돌며 낙동강을 기록해온 그이지만, 믿기지 않아 직접 물었다. “정말 수문을 열고 난 뒤 변화가 있냐”고 묻자 “못 믿겠으면 가서 보라”는 말로 확신을 주었다.

우리는 ‘망가진 강을 이대로 둘 순 없다’면서도 수문 개방, 보 철거, 재자연화와 같은 말을 주고받느라 여태 조인 숨통조차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강은 망설임 없이 다시 너른 가슴을 열어 품어주려 한다. 참 염치없지만 고맙다. 대구에 살면서 매일 낙동강물을 마시는 사람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올여름에는 고인 ‘녹조라떼’ 말고, 흐르는 맑은 물을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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