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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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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교육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영어수업 금지 정책 시행을 잠정 보류할 전망이다. 학부모들의 반발이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자 청와대에서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전문가들과 수요자들의 의견을 들은 뒤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다듬겠다는 방침이다. 15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교육부에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영어수업을 금지하는 정책과 관련해 해당 안을 재검토하고, 학부모 의견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조율하라고 요청했다"며 "교육부에서 이런 요청을 반영한 새로운 정책안을 가져왔고 이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이에 교육부는 청와대와의 논의를 바탕으로 16일 '유치원 영어교육 규제와 관련한 추진 방향'을 발표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청와대 및 관련 부처들과 논의를 거쳐 17일 관련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사회적 논란이 큰 것을 감안해 하루 앞당긴 16일 발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3월 신학기부터 도입하려던 조기 영어교육 금지 정책을 잠정 보류하면 지난해 12월 27일 방침을 정한 뒤 3주 만에 기존 발표를 뒤집는 셈이 된다.

당초 교육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영어수업 금지라는 정책 방향은 지키되 1년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할 계획이었다. 3월부터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초등학교 1·2학년 방과 후 영어교육이 금지되기 때문에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방침은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학부모들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수업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율동이나 노래·게임 등으로 이뤄지는 하나의 놀이"라며 "대안 없이 영어수업을 무조건 금지시키면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학부모들이 학습지 방문과외와 영어학원을 알아보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사교육 팽창을 낳는 풍선효과에 대한 염려가 현실화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명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에는 "방문과외 영어 선생님 추천해주세요" "영어학습지 튼튼영어, 웅진씽크빅, 눈높이 중 어디가 좋나요?" 등 괜찮은 사교육 업체를 수소문하는 글 수십 건이 쏟아졌다.

유치원 정보공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국 사립유치원 학부모 부담금은 평균 21만6189원이며 이 중 방과 후 과정 비용은 3만3481원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학부모들의 반발은 국민 청원으로도 이어졌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금지 방침 철회 청원'에는 지난 9일 기준 7000명 넘는 사람이 동의했다.

한 국립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유아기에 다양한 언어교육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다"며 "방법에 따라 그 효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고, 놀이 형태로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립대 영어교육학과 교수는 "학부모들은 아이들 영어교육을 포기하지 못한다"며 "공교육에서 영어가 해결된다는 믿음이 없는 한 사교육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선 교육부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분위기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작년 8월 취임한 이후 각종 교육 정책을 쏟아내는 가운데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부가 발표한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정책의 신뢰성에 점점 금이 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욱이 최근 교육부 정책은 고교-대학으로 이어지는 '줄 세우기 경쟁'을 완화시키겠다는 정책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서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 소재 한 중학교 교사는 "교육부가 교육 현장과 이해관계자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고 실적 내기에만 급급하니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효혜 기자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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