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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쏟아지는 1심 무죄판결, 대법·헌재 움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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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작년 44건으로 13년간 61건 중 최다

‘양심의 자유’·형사재판 원칙 명시도

헌재 소장 “최우선 해결” 밝혀 주목



한겨레

지난해 1심 법원이 종교·평화적 이유로 입영하지 않거나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한 사건은 모두 44건(45명)인 것으로 14일 집계됐다. 2004년 첫 무죄 판결을 시작으로 이어진 총 61건의 무죄 선고 중 대다수가 지난해에 집중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올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국회와 정부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2017년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판결과 관련해 일선 법원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난 해로 꼽힌다.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단독판사가 2004년 5월 종교적 이유로 입영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이들에게 처음 무죄를 선고했지만, 그다음 무죄 판결은 2007년에 가서야 1건이 나오는 데 그쳤다. 또 그로부터 다시 무죄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8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2004년 7월1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유죄 판결과 2004년, 2011년 헌법재판소의 두 차례 합헌 결정, 그리고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대체복무제 도입 철회 등의 사회적 분위기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8년 뒤인 2015년 6건의 무죄 판결이 나온 뒤부터 분위기는 점차 달라지고 있다. 2016년에 첫 항소심 무죄 판결 3건을 포함해 7건의 무죄 판결이 나왔고, 2017년에는 19명의 판사가 44건(45명)의 무죄 판결문을 썼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한 판사는 “처음에는 헌재가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지만, 헌재의 입장이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이자 법관이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라고 판단하면 무죄를 선고하는 게 맞다는 공감대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무죄를 선고하지 않더라도 헌재 결정 때까지 재판을 연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은 지난 한 해 동안 건수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발전했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판사들은 헌법 제19조 양심의 자유, 국제인권 규범의 해석,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아 벌어지는 상황 등을 들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제주지법 강재원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11일 국내외의 모든 논의를 모아 60쪽에 달하는 가장 긴 무죄 판결문을 쓰기도 했다. 강 부장판사는 “국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원칙에 따라 개인적 양심의 결정에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 시대에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고 결론 내렸다.

형사재판의 원칙을 강조한 무죄 판결도 여러 건 나왔다. 울산지법 안재훈 단독판사는 지난해 12월20일 무죄 판결문에서 수사결과보고, 진술서 등 검사가 제시한 증거를 하나하나 따지며 “병역법에는 ‘정당한 거부 사유가 없음’을 검사가 입증하게 되어 있는데,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안 판사는 “대법원 판결과 헌재 결정에 기대어 기계적으로 사건이 처리되고 있는 것은 반드시 시정해야 할 관행”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1심 무죄 판결에도 국회나 정부, 대법원과 헌재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대법원은 지난해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 15명의 유죄를 확정했다. 다만 이진성 헌재소장이 최근 <법률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도 답을 내놔야 할 시기가 됐다. 재판관이 9명이 됐으니 최우선으로 해결해볼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혀, 향후 헌재의 행보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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