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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헌법 11.0 다시 쓰는 시민계약] 헌법 속 생명, 과학 아닌 윤리…국가 ‘보호의무’ 범위 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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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명, 사회적인 죽음

사형·존엄사·낙태·인공지능…‘개인의 생명권’ 재정립할 때

1987년 ‘6월항쟁’은 한 생명의 죽음으로 시작됐다. 서울대생 박종철의 사망은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의 생명권 침해였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생명을 빼앗았다. 이렇게 촉발된 1987년 개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형이란 단어를 처음으로 헌법에 등장시켰다. 헌법 110조4항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중략)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이다.

사형이라고 적힌 이 조항을 두고 헌법재판소는 오랫동안 논쟁했다. 다수 의견은 “문맥상 사형제도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소수 의견은 “아무리 비상 상황이라도 사형 선고만은 모든 법적 절차를 인정해주라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세계적으로 사형제도는 위헌논쟁이 아닌 존폐논쟁의 대상이다. 하지만 헌법에 쓰인 단어 하나가 큰 논란을 불러온 것만은 분명하다.

생명은 고귀하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생명권은 인간의 탄생과 함께 주어진 것으로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현행 헌법 시행 30년이 지난 지금, 생명의 자기결정 범위를 놓고 국가와 개인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시민들은 죽음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존엄사의 기준을 마련하며, 국가가 낙태를 합법화하라고 한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국가에 내맡기지 않으려는 개인의 욕구가 커진 것으로, 주권권력의 논리가 우리의 삶에 확대되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설명했다.

개헌의 핵심은 인권과 권력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고, 개헌 논쟁에 생명권이 빠질 수 없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사의 기준은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 특히 생명의 시작과 끝에 관한 판단은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 윤리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문제가 됐다. 시민들은 묻는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형제, 존엄사, 낙태, 인공지능을 관통하는 생명의 본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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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규제한다. 자살방조죄가 있어 다른 이의 자살을 눈감은 사람도 처벌한다. 자살한 당사자는 세상에 없어 기소하지 않을 뿐이다.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사람에게 보험급여를 해주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두고 “자신의 생명을 저버릴 권리, 생명을 누리지 않을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 셈”이라고 김영란 전 대법관은 설명한다. 헌법의 언어로 말해보면, 자살은 개인의 운명결정권이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라는 한계선을 넘은 것이다.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는 개인의 헌법상 기본권인 생명권에서 나온다. 현행 헌법에는 생명권이 없지만 헌법재판소가 행복추구권 등에서 도출했다. 그러다 세월호 사고가 있었던 2014년 생명권을 헌법에 명시하자고 19대 국회 헌법개정 자문위원회가 제시했다. ‘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가진다’를 기본권 조항으로 적자고 했다. 일반적으로 생명권은 소극적으로는 개인이 국가의 생명 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이고, 적극적으로는 제3자의 생명 침해로부터 국가의 보호를 청구할 권리를 가리킨다.

■ 사형제는 위헌논쟁 아닌 존폐논쟁 대상

가장 첨예한 생명권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 사형제도다. 국가가 생명 침해를 막기는커녕 생명을 빼앗기 때문이다. 사형제 논쟁의 핵심은 ‘생명에 대한 가치 평가가 가능한지’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 죽을 만한 생명이 있는지, 아니면 생명은 절대적으로 보호되는지이다. 평가가 가능하다는 설명은 사형제가 합헌이라는 근거로 쓰이고,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은 곧바로 위헌 결론이 된다. 가능론은 군사작전이나 정당방위 등을 비슷한 예로 든다. 불가능론은 범죄가 종료된 뒤의 사형은 차원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 헌법은 기본권도 제한이 가능하지만 본질적 제한만은 안된다고 정하고 있다. 헌법 37조2항은 “(전략)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이다. 이에 사형제 위헌을 주장하는 사람은 “생명은 단순해서 삶과 죽음 두 단계뿐이고 따라서 사형은 본질적 침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반면 합헌을 주장하는 경우 “생명도 사회적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군사작전, 정당방위, 사형집행, 낙태와 존엄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사형제는 위헌논쟁이 아닌 존폐논쟁의 대상이다. 1996년 헌재는 사형제도에 대한 첫 판단에서, 헌법에 위반되지는 않지만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헌재는 “사형을 형벌로써 계속 존치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고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찬반의 논의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며 “생명을 빼앗는 사형에 의한 범죄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된다면 사형은 곧바로 폐지되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당연히 헌법에도 위반되는 것”이라고 했다.

많은 나라들이 개헌을 통해 사형을 폐지했다. 네덜란드는 1982년에, 루마니아는 1990년, 네팔은 1997년에 개헌에서 사형제도를 없앴다. 2009년 발효된 유럽연합(EU) 기본권 헌장도 사형을 금지했다. 2조2항에서 “어느 누구도 사형을 선고받거나 집행당하지 않는다(No one shall be condemned to the death penalty, or executed)”라고 정했다. 2010년 두 번째 사형 사건에서 합헌의견을 낸 민형기 전 헌법재판관은 “헌법에 의한 폐지 외에도 대통령이 사형수들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사형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 낙태와 존엄사, 국가와 개인의 갈등

국가와 개인의 갈등인 사형제를 제외하면 생명권 논쟁은 자기결정권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 존엄사와 낙태가 대표적이다. 국가가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무한정 인정할 수는 없는데 생명과 관련되면 더욱 복잡해진다. 그래서 헌법에 막연히 생명권을 넣는 수준을 넘어 낙태와 존엄사에 대해 입장을 밝히자는 주장도 있다. 2009년 국회의장 자문기구 헌법연구 자문위원회 보고서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같은 해 발효된 EU 기본권 헌장은 3조2항에서 우생학적 처지 금지, 인간복제 금지 등을 상세하게 밝혀두었다.

전통적인 생명권 사상은 낙태도 존엄사도 금지한다. “나는 그 누가 요구해도 극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복중 태아를 가진 임신부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기원전 5세기 무렵 만들어진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한 구절이다. 이 때문에 현대의 낙태와 존엄사 논쟁은 생명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생명권은 언제 시작돼 언제 없어지는지를 다투어왔다. 결국 현대의 삶과 죽음은 과학적이라기보다 윤리적이고, 어쩌면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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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법원의 김 할머니 사건 판결은 존엄사에 관한 치열한 헌법논쟁이다.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의 후속 판결의 성격이다.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 의사들은 보호자 없는 응급환자를 수술했다. 다음날 환자의 가족이 치료비를 부담하기 어렵다며 퇴원을 요구했다. 의사들은 보호자의 요구를 거부하다가 결국 ‘환자의 죽음에 대해 병원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퇴원시켰고 곧 사망했다. 대법원은 보호자에게 살인죄 유죄, 의사에게 살인방조죄 유죄를 선고했다.

보라매 판결 이후 의사들은 불가피하게 환자를 내보내더라도 산소통을 보호자 집에 설치해 주고 왔다. 산소를 추가로 공급하지 않아 환자가 죽어도 보호자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무렵 김 할머니 사건이 생겼다. 2008년 76세이던 김 할머니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 출혈로 식물인간이 됐다. 가족들은 중환자실의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세브란스병원은 거부했다. 그러자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 제거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연명장치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개념을 만들었다. 김 할머니는 ‘회복이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라는 것, 김 할머니 본인의 ‘연명치료 중단 의사가 추정된다’는 것이다. 풀어 말하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선에서 면으로 확장하고 이곳에 김 할머니를 놓은 다음, 다시 김 할머니를 생생한 삶으로 끌어와 어떤 선택을 할지 물은 것이다. 이 판결로 뇌사에 빠지기 전에 존엄사 의사를 밝히면 연명치료 장치 제거가 가능해졌다. 그래서 존엄사가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이 대법원 판결은 존엄사를 합리화하기 위해 가정에 가정을 더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를 정면에서 지적한 사람이 최고 민법학자로 인정받는 양창수 대법관이다. 그는 반대의견에서 회복불가능한 단계라는 것에 동의할 수도 없고, 추정적 의사라는 말도 결국 가정(假定)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존엄사 판단 기준으로 ‘죽음의 경계’와 ‘본인의 의사’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삶과 죽음을 자기결정권만이 아닌 종합적인 관점에서 보자고 했다.

“그 가족을 포함한 환자 측 및 의료기관의 제반 사정을 합리적으로 고려하여 정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환자의 나이·직업이나 경력, 평소의 종교·신념이나 생활태도, 질환의 경과와 현재 상태, 생명 연장이 가능한 기간의 장단, 이미 지출한 또는 앞으로 지출하게 될 비용, 가족들의 상황, 환자로 인한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 그들의 경제적 지출을 포함한 생활상의 희생 등 환자 측의 사정은 물론이고, 의료기관의 성격이나 설비, 그 진료의 내용과 결과, 의료진의 견해 등과 같은 의료기관 측의 사정이 문제 될 것이다.”

종합적으로 생명권에 접근하자는 이 주장에 의료계는 긍정적이다. “죽음의 기준이 심폐정지에서 뇌사로 바뀌었지만 앞으로 또 모른다. 근본적으로 삶과 죽음은 온(On)과 오프(Off)가 아니라 무수히 변하는 프로세스”라고 백승재 한국노바티스 상무(의사)는 말했다.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전 회장(의사)도 “뇌사를 판정받은 청소년이 장기기증 직전에 깨어난 일이 이미 2012년에 덴마크에서 있었다. 과학이 가치판단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임의기준인 과학을 근거로 절대기준을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이런 입장을 확장해 생명의 사회적 성격을 설명한 것이 2012년 헌재가 낙태죄에 합헌을 선고할 당시의 반대의견이다. 이강국 소장, 목영준 재판관 등은 목숨 그 자체에서 나아가 사회적 생명이 보장돼야 의미가 있다고 했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부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에야 비로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태아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에는 출산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성이 임신 중 또는 출산 후 겪게 되는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반대의견을 의식해 합헌의견도 태아의 생명권을 사회적 성격에서 강조했다. “인간이면 누구나 신체적 조건이나 발달 상태 등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생명 보호의 주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아도 성장 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 특히 의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태아가 모태를 떠난 상태에서의 생존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임신 후 몇 주가 경과하였는지를 기준으로 보호의 정도를 달리할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헌법이 말하는 생명은 사회적이다.

■ 인공지능이 생명을 결정하는 시대

생명을 다루는 현대과학은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많은 국내 대학병원에서 암 진단에 IBM 왓슨을 쓴다. 암환자의 종양세포와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치료법을 추천한다. 아직 의사를 돕는 수준이지만 인공지능만의 판단으로 치료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한다. 질병 유전자를 잘라내고 정상 유전자를 넣는다는 유전자 가위(programmable nuclease) 연구의 대가 김진수 서울대 교수는 유력한 노벨상 후보다. 이런 현실이기 때문에 존엄사 사건에서 ‘회복이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인지를 주요하게 보거나, 낙태죄 사건에서 ‘생존 가능성’을 크게 염두에 두면 인공지능이 결정권자가 된다는 예상이 나온다.

이런 문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 기술면에서 최종 단계까지 진입했지만 생명권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자율자동차가 사고 상황을 맞이했을 때 적은 사망자와 많은 부상자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등을 미리 정해야 한다. 사람 운전자가 사고가 벌어진 이후 결과만 책임지는 것과 다른 상황이다. 이중기 홍익대 로봇윤리와 법제연구센터 교수는 “자율주행자동차는 사전에 계획적으로 피해자 유형을 선택해 사고를 내도록 설정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차별금지와 평등권 등 헌법적 가치 평가를 통해 승인될 수 있는 알고리즘이 설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이 개인에게 보장하는 생명권은 국가에게 생명권 보장 의무를 지운다. 하지만 국가가 생명권 보장의무를 위반했다고 헌재가 판단한 적이 없다. 2014년 세월호 사고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했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에 대해서도 국가가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헌재는 결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는 과소보호 원칙을 어겼을 때만 위헌이라고 했다. 즉, 국가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 위헌인 것이다. 그래서 생명권 조항이 신설되더라도 사형, 존엄사, 인간복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도움말

김영란 전 대법관,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 민형기 전 헌법재판관, 백승재 한국노바티스 상무(의사), 이명진 전 의료윤리연구회장(의사), 이중기 홍익대 법과대학 교수,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대기아자동차

■참고문헌

미셸 푸코 <임상의학의 탄생>,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국제인권법연구회 번역 <법률가를 위한 인권편람>, 미래에셋대우 〈New Mobility 2025〉, 2009년 국회의장 자문기구 헌법연구 자문위원회 <결과보고서>, European Union 〈Charter of Fundamental Rights of the European Union〉


■특별취재팀 =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임아영·김경학·김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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