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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르포]조선소에 배도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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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STX조선·통영 성동조선 가보니...정부 구조조정 방안만 기다리며 수주 사실상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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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해 STX조선해양 조선소 모습. /사진=강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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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에 배도 사람도 없다.

이르면 내달말, 늦으면 3월초쯤 발표될 정부의 중견조선사 구조조정 방안을 기다리고 있는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의 현실이다.

'사느냐, 죽느냐'의 선고를 두고 정부가 일정을 미루면서 조선소가 입는 타격도 커졌다. 당초 지난해 추석 전후 발표될 거란 구조조정 방안은 2차 실사가 진행되면서 다시 연기됐다. 두 조선소는 처절한 고정비 줄이기와 갈팡질팡하는 선주의 마음 붙잡기에 총력을 쏟으며 생존에 희망을 건다.

지난 12일 경남 진해. 이례적으로 영하 7.8도를 기록한 날 아침 STX조선해양 조선소에 도착했다. 강추위에 조선소는 1시간 가량 조업을 중단했다. 영하의 날씨가 드문 땅에 몰아치는 칼바람은 생사갈림길에 선 이들의 심정인듯 했다.

철판이 모여 배의 형체를 갖추고 사람이 북적여야할 야드는 텅 비어있었다. 조선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골리앗 크레인 꼭대기에 달린 와이어로프는 꽁꽁 묶여 있었다. 당장 선박을 건조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김영민 STX조선해양 조선소장은 "현재 지난해 4월 계약한 선박중 2척에 들어갈 블록을 만드는 공장만 가동 중"이라며 "오는 3월은 돼야 도크에서 건조가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돌아가는 블록공장도 가동률은 70%에 머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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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STX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출항을 대기 중인 LR1 탱커 모습. 남은 2척이 모두 인도되면 오는 9월까지 인도예정된 선박은 없다. /사진=강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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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크를 지나 조선소 안벽에 다다르자 그리스 안드리아키시핑에 인도될 7만4000톤급 LR1(Long Range 1) 탱커 2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이 출항을 끝낸 다음달부터는 바다 위에 떠있는 배도 사라진다.

김 조선소장은 "이런 적은 1995년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STX조선은 오는 9월 중순까지 7개월간은 선박 인도 대금 없이 보릿고개를 버텨야 한다.

전성기때만 해도 12척 정도의 선박이 꾸준히 들어서 있던 곳이었다. 2013년 자율협약 이전 사무직과 생산직을 합쳐 3677명, 협력업체 직원들도 4428명에 달했던 이 조선소는 현재 사무직과 생산직 1336명, 사내협력사 738명으로 절반 넘게 인원이 줄었다. 이중 현재 출근하는 인력은 940여명 정도다.

현재 수주 가능성이 보이는 프로젝트도 5개 가량 되지만 선주들이 최종 싸인은 정부의 결정을 보고나서 하자고 한다. 이미 수주한 선박 11척 중 4척은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이 안돼 선주와 계약을 미루기로 했다.

이 사이 STX조선은 고정비 절감을 위해 노조와 협의에 들어갔다.

박영목 기획관리부문장(상무)는 "지난 5일부터 노사 실무협의회를 열어 무급 휴직 등으로 생산직을 50% 더 줄이는 방안을 얘기 중"이라며 "현재 상황에선 수주 협상에 한계가 있어 고정비 절감이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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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위치한 성동조선해양 2야드가 비어있는 모습. /사진=강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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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성동조선해양도 조선소에 들어서기 전부터 사람이 사라진 곳임을 실감케 했다.

인근 원룸과 식당들은 제각각 '임대 문의' 팻말이 붙어있었다. 침체된 분위기의 반전을 소망하는 듯 한 편의점 앞에는 '여러분은 자랑스런 통영인입니다'란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조선소 입구 1500대를 수용 가능한 주차장도 몇십대가 세워져있는게 고작. 성동조선은 지난해 3월쯤 1,3야드를 닫고, 2야드만 운영 중이다. 2야드는 연간 20척 정도를 건조할 수 있지만 지난해 11월 마지막 인도를 끝내고 나선 배와 사람 모두 찾기 힘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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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상반기 문을 닫은 성동조선 1야드와 2016년말 폐업한 SPP조선의 모습. /사진=강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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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남은 5척의 배는 철판만 일부 들여온채 정부의 방침이 정해질때까지 선주가 기다려보자고해 건조 대기 중이다.

성동조선은 한때 통영에서 고용인력 1만명 가량을 책임졌지만 지금은 그 수가 급격히 줄었다. 2500명에 달했던 정규직원 수는 현재 1240명 수준으로 절반이상 감소했다. 여기서 내달말 정부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적어도 두달간은 1000명정도가 휴직을 지속한다. 지금은 240여명의 직원만 남아 생존 이후를 대비해 시설을 갈고 닦고 있다. 협력업체 역시 사실상 전부 철수 상태다. 60여명만 남아 설비 보수에 투입된다.

성동조선은 새해들어 플로팅도크(해상도크) 1개를 121억원에 국내 중소조선사에 매각했다. 문만 열어놔도 유지비용만 한달에 100억원 가까이 드는 조선소와의 고정비 싸움에 한창인 것.

영업에도 공을 들여 4~5개 정도 가시권에 들어오는 계약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선주들은 '조선소가 생존하느냐'며 최종 싸인은 좀 더 지켜보자고 한단다. 이병상 경영기획팀장은 "오랜 파트너 관계를 구축 중인 그리스 선사는 옵션 계약을 발효하면 경영정상화에 도움이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6년 40년만에 찾아온 최악의 수주절벽과 정부의 조선사 재편방안 발표 연기 등이 겹치며 일감 공백에 시달리는 이들은 재도약을 준비 중이었다. 올해 시장이 호전되는 만큼 수주는 자신있다는 입장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경남 지역에만 조선관련 기자재업체가 800곳이 넘고 인력은 2만여명에 달한다"며 "배를 한척 수주하면 선가의 60~70%는 협력업체 매출로 이어지는 낙수효과가 큰 산업인 만큼 이들이 문을 닫으면 지역경제 침체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해·통영(경남)=강기준 기자 stand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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