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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조용헌 살롱] [1126] 화폐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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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인간사의 우선순위는 재색명리(財色名利)이다. 재물이 1번 아닌가! 원시시대에는 곡물, 고기, 동물 가죽, 올리브기름 등등이 화폐였다. 현물 화폐를 대표하는 종목은 역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차마고도(茶馬古道)가 이러한 물물교환을 대표하는 교역로이다. 채소 섭취가 어려운 해발 3000~4000m의 고지대에 사는 티베트 사람들은 중국 윈난성에서 나오는 차를 마셔야만 비타민이 보충된다. 윈난성 사람들은 티베트의 말을 대신 가지고 왔다. 이런 오지에서는 황금보다도 먹을 게 더 중요하다. 배고프다고 황금을 씹어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물 다음으로 발전한 화폐는 금은(金銀)이다. 서양의 고대문명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전한 교역문명이다. 중국,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고대문명이 농경문명이었다면 서양은 장사를 위주로 성립한 상업문명이라는 점이 다르다. 고대 그리스만 하더라도 척박한 땅이고, 여름에 비가 오지 않는 기후 조건이므로 자급자족이 어려웠다. 밀의 생산지인 북아프리카 지역에 배를 타고 가서 밀을 사 와야만 하였다.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금과 은이 화폐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황금은 희소성이 있고, 썩지 않고 빛이 나는 장식적 효과가 있는 광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휴대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황금을 대체한 것이 지폐이다. 종이쪽지에 글자와 그림을 잉크로 인쇄한 지폐의 대표는 20세기부터 주도권을 잡은 미국의 달러이다. 종이쪽지에 불과한 달러가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이유는 미국의 파워와 신용이다. 미국 달러의 신뢰도에 금이 가기 시작한 2008년 금융 위기부터 가상 화폐가 등장하였다. 미국이 무데뽀로 달러를 찍어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동시에 인터넷으로 연결된 21세기에는 가상 화폐가 지폐보다 사용하기 편리하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진화된 화폐라고 본다. 큰 방향에서는 가상 화폐로 가는 게 흐름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가상 화폐가 지폐를 대체할 신뢰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까지 지불해야 하는 대가와 함정이 어떤 것인가를 아직 확실히 모른다는 데에 있다. 화폐도 진화한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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