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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태평로] 지지층 환호만 보면 경고음 들리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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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정부 군사작전하듯 정책 추진, 지방선거 보면서 지지층 의식

前정부도 '불통의 독주'로 파탄… 반대편 목소리 듣지 않을 때 위기

조선일보

배성규 정치부장


지난해 문정인 대통령 안보특보의 잇단 '한·미 훈련 축소' 발언이 논란을 빚던 때다. 당시 청와대 고위 인사에게 물었다. "안보특보가 저러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답은 이랬다. "문 특보는 지금 우리 지지층에 메시지를 던지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말을 해주는 거죠. 문 특보는 필요합니다."

미국 조야(朝野)의 불쾌감에도 한·미 동맹을 흔드는 문 특보의 발언은 계속됐다. 제동을 걸었던 송영무 국방장관이 오히려 경고를 먹었다. 전직 주한 미군사령관들이 '동맹 파기, 미군 철수'를 꺼냈지만 문 특보는 끄떡없었다.

정부의 각종 정책이 논란이 됐을 때 청와대 인사에게 또 물었다. 수위 조절을 좀 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때도 답은 이랬다. "우리 지지층이 뭘 바라는지를 봐야 합니다."

최근 정부 주요 정책을 놓고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최저임금 인상엔 영세 자영업자들이 볼멘소리를 낸다. 노동시간 단축에는 중소기업들이 아우성이다. 잇단 규제에도 서울 강남 집값은 계속 치솟고 있다. 가상 화폐 대책을 놓고는 청와대와 정부가 혼란에 빠져 있다. 제주 강정마을, 용산 화재참사 등 이미 종결된 과거 사안은 재조사하겠다고 한다. 탈(脫)원전 정책과 비(非)정규직 정규직화 논란도 잠복돼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반응은 한결같다. "초기 어려움이 있더라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 대부분은 문 대통령 대선 공약이다.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약과 실제 정책 추진은 다르다. 타당성이 있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현실 적용에 무리가 따른다면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추진 시기를 늦춰야 할 때도 있다. 다수의 피해가 생긴다면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한데 정부는 엄청난 경제·사회적 파장을 몰고올 정책을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고 있다. 그중 상당수는 시장 기능을 무시하는 국가주의, 규제 일변도 성격이 짙다. 시장의 가격 기능을 마비시키면 경제엔 비효율과 편법이 나타난다. 시장의 보복이다. 어떤 정부도 시장을 이기긴 힘들다.

그런데도 정부가 강경한 건 문 대통령을 찍었던 지지층을 의식하기 때문이란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아무리 반론(反論)이 제기돼도 청와대엔 지지층의 '찬성 목소리'가 훨씬 크게 들릴 것이다. 문 대통령 지지층이 누구보다 결속력과 충성도가 강하다는 점에서 더 그럴 것이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6월 지방선거, 나아가 총선·대선까지 본다면 '핵심 지지층'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지층만 보는 정치는 그 결말이 아름답지 않았던 적이 많다. 박근혜 전 대통령만 봐도 그렇다. 40~50%대를 넘나들던 콘크리트 지지층만 믿고 '불통의 독주(獨走)'를 했다. 그 결과는 국정 파탄이었다. 로마 3대 황제 칼리굴라는 시민들의 대대적 환호 속에 등극했다. 하지만 지지층의 환심을 살 '인기 시책'과 이벤트에 매달리다 파탄이 났다. 전임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 황제의 유산을 4년 만에 다 날려 버렸다.

올해는 우리 경제와 안보의 중대 기로(岐路)다. 지지층뿐 아니라 기업·자영업자, 심지어 야당 목소리까지 포용하지 않으면 정책이 적기(適期)에 제대로 시행되기 힘들다. 일자리 문제부터가 그렇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 집무실에 현황판까지 세웠다. 그런데 지금 그 현황판은 어딜 가리키고 있는가. 지지층만 바라보면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경고음은 잘 들리지 않는 법이다. 거기서부터 위기가 시작된다.

[배성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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