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도 '내로남불' 징계
일반공무원은 중징계 사안
탄핵·금고 이상형 아니면 판사는 파면할 수 없어
대법원은 지난 4월에도 고속도로에서 음주 운전을 하다 앞차를 추돌하고 도주한 인천지법 장모 부장판사에게도 감봉 4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그는 형사재판에선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사표를 낸 상태여서 징계가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사표와 징계는 별도 문제다. 한 변호사는 "사표를 냈다고 징계 수준을 낮추는 건 합리화될 수 없다"며 "대법원이 너무 가벼운 징계를 했다"고 했다.
공무원징계령 시행 규칙에도 고의(故意) 범죄는 중징계 사안이다. 공무원 징계에는 직(職)을 박탈하는 파면·해임부터 정직(停職)·감봉·견책 등이 있는데 성범죄는 원칙적으로 정직 이상의 중징계 대상이다. 또 징계 수위를 정하는 데 사표를 낸 사실은 고려 대상도 아니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재직 중 징계받고 사임한 경우 변호사 등록을 거부할 수 있는데 징계 수위에 따라 등록 거부 기간이 1~2년으로 달라진다"며 "징계는 사표와 별도로 분명히 정해져야 한다"고 했다.
판사의 몰카 범죄에 대한 경징계는 해당 범죄에 실형을 선고하는 법원의 최근 판결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울산지법은 지난 10월 상가 여성 화장실에서 용변 보던 여성을 촬영한 20대 남성에게 징역 5개월을 선고했다. 제주지법은 지난 13일 화장실에서 친구 아내를 촬영한 30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인천지법은 지난해 지하철 등에서 460여차례 몰카를 찍은 30대 남성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은 범죄 정도가 홍 판사보다 훨씬 무겁다. 하지만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원이 판결을 선고하는 판사의 범죄에 대해선 조금 더 엄중하게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고 했다.
판사에 대한 징계가 약한 데는 제도 탓도 있다. 판사는 탄핵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가 아니면 파면할 수 없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법관징계법에 따라 정직·감봉·견책만 가능하다. 홍 판사와 장 부장판사는 벌금형을 선고받아 파면은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이 비교적 가벼운 처분인 감봉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현행 제도하에서는 본인이 사직하지 않으면 벌금형을 선고받아도 판사를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13년 법정관리 기업에 지인(知人)인 변호사를 소개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0만원이 확정된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에서 정직 5개월의 징계를 받았지만 현재까지 재직 중이다. 재판은 하지 않고 사법연수원 소속으로 돼 있다.
헌법에서 판사 신분 보장 규정을 둔 것은 재판의 독립성을 보장해 공정한 재판을 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이 규정이 종종 비위 판사의 보호막으로 활용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결국 그 피해는 그런 판사들에게 재판을 받는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법관징계위원회에 법조인뿐 아니라 외부 인사 참여를 더욱 늘려 징계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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