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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유커 모집 수수료 50% 올려라" 콧대 높아진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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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그후… 중국 여행사들 오히려 배짱 영업]

국내여행사, 손해 만회 위해 '쇼핑 뺑뺑이'로 덤핑관광 우려

영어·일어 배우는 중국어 가이드 "제2 사드사태 오면 또 일 못해"

중국인 단체 관광 전문 C여행사 대표는 지난 8일 중국 후베이(湖北)의 한 여행사를 방문했다. 지난 3월 중국 정부의 '금한령(禁韓令·한류 금지령)' 조치 이후 C여행사는 사실상 휴업 중이다. 지난달 31일 양국 정부가 관계 개선에 합의하면서, 중국 단체 관광이 재개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 출장 때 중국 여행사 관계자를 만나고 크게 낙담했다. 1인당 모객(募客) 수수료를 이전 400위안(약 6만7000원)에서 600위안(약 10만원)으로 50% 올려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중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라, 국내 여행사는 중국인 관광객을 현지에서 직접 모을 수 없다. 이 점을 노려 중국 여행사가 과도한 모객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C여행사 대표는 "중국 여행사들이 금한령으로 한국의 관광·유통업계가 얼마나 심각한 타격을 보는지 직접 확인했다. 이런 약점을 노려 배짱을 부리는 것 같다"고 했다.

中여행사 "모객 수수료 인상" 압박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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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여행사는 심각한 '불균형 관계'다. 예컨대 한국 여행사가 중국인을 대상으로 25만원짜리 제주도 3박 4일 여행 상품을 판다. 고객 영업은 중국 여행사만 할 수 있다. 한국 여행사는 여행 상품값 25만원에 일정 금액의 모객 수수료를 얹어 중국 여행사에 지급한다. 중국 여행사는 이 돈을 받아 항공비(15만원 안팎)와 비자 발급 수수료(약 5만원)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모두 챙긴다. 제주 여행 중 발생하는 숙박비와 교통비 등은 모두 한국 여행사가 부담한다. 이렇게 손해를 본다고 해서 중국 단체 관광 상품을 업계에선 '마이너스 투어'라고 부른다.

한국 여행사는 손해를 면세점·특산물점 등으로부터 받는 쇼핑 수수료(리베이트)로 충당한다. 여행사는 대형 면세점으로부터 판매금의 20%, 시내 중소형 면세점이나 특산품 판매점에선 약 40%를 받는다. 서울 마포구의 한 여행사 부장은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중국인 관광객 1인당 적어도 150만원 이상 쇼핑을 해줘야 한다"며 "앞으로 모객 수수료가 오르면, 어쩔 수 없이 더 심하게 '쇼핑 뺑뺑이'를 돌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덤핑 관광을 경험한 중국인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리 없다.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재방문율은 29.5%로, 일본인 관광객(74.1%)에 비해 크게 낮았다. 서울 서초구의 한 여행사 대표는 "미용·패션을 내세운 350만원짜리 관광 코스를 알차게 짰지만, 한국 덤핑 여행에 질린 중국인들로부터 외면당했고, 중국 여행사도 상품을 팔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영어·일어 배우는 중국어 가이드

조선일보

금한령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중국어 전문 관광통역안내사(가이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언제 다시 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경력 5년 차 한 중국어 전문 여행 가이드(34)는 지난 9월 영어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에 응시했다. 지난 3월 이후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6개월 가까이 가이드 일을 못 했다. 대리운전·식당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로 생계를 꾸렸다. 이 가이드는 "중국이 이번처럼 또 한국 관광을 제한할 수도 있지 않느냐. 다시는 중국인 관광객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다양한 국적의 손님을 받겠다"고 했다.

중국어 가이드 중에서 영어·일본어 가이드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리는 이들이 많다. 올해 9월 실시된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에선 영어 신청자가 1476명으로 2014년 937명보다 크게 늘었다. 일본어 신청자는 과거와 비슷한 500명대였다. 반면 중국어 신청자는 2808명으로 2014년 9639명의 4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서울 중구의 한 관광가이드학원 원장은 "올해 중국어반 등록 인원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라면서 "대신 영어반·일본어반 등록 인원이 지난해보다 20% 늘었다"고 했다. 이 학원의 영어반 수강생 80여 명 중 14명이 중국어 가이드 자격증 소유자다.

일부 가이드는 중국 표준어 대신 동남아 거주 중국인들이 많이 쓰는 광둥어(廣東語·중국 남부 방언) 공부를 한다. 홍콩이나 말레이시아 화교를 대상으로 가이드 일을 하기 위해서다. 한 중국어 가이드(25)는 "한·중 관계가 안 좋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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