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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자율동아리 가짓수 늘리기보다 활동에 '깊이' 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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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이 말하는 '자율동아리 활동'

전공 연계 동아리 급조, 금방 들통 … 탐구·토론 등 구체적 내용 담아야

"윤동주 시인은 100여 편의 시를 남겼는데, 오늘은 그 중 한 편을 살펴볼 거예요. 우선 영화 '동주'에 출연한 배우 강하늘씨가 낭독한 '서시'를 들어볼게요."

칠판 앞에 선 이신영(서울 세화여고 2)양이 친구·후배들에게 시(詩) 수업을 시작했다. PPT로 수업 자료를 준비한 이양은 컴퓨터와 전자칠판 등을 능숙하게 다루며 수업을 이어갔다. 세화여고 자율동아리 'NEIS'의 '가상수업' 활동 모습이다. 교육 관련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 16명이 모인 NEIS는 (시험기간을 제외하고) 2주에 한 번씩 모여 교사 인터뷰·독서토론·가상수업·멘토링 등 활동을 한다. 가상수업에선 수업계획안을 미리 짜서 제출하고, 수업 후 (강의를 들은) 다른 동아리원의 피드백까지 받는다. 윤세령·임소희(2학년)양은 "교사라는 꿈이 막연하게만 느껴졌는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꿈을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며 "교사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교사가 되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지 등을 생각해볼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교내에서 자율동아리로 꿈을 키우는 모범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요즘 고등학교에선 '자율동아리'가 대세다.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 선발 비중이 늘면서 자율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고교생도 크게 늘었다. 학교알리미 공시자료 분석에 따르면, 올해 고등학생들의 자율동아리 활동 참여 비율은 62.3%로, 2015년 39.4% 대비 22.9%p 높아졌다. 세종특별자치시(103.5%), 강원도(100.8%) 등 일부 지역에선 참여율이 100%를 넘을 정도다(중복 가입 포함).

하지만 자율동아리를 '입시용'으로만 여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활동도 안 할 동아리를 만들어 가입 개수만 늘리는가 하면, 겉보기에만 그럴듯해 보이는 동아리를 만드는 식이다. 대학 입학사정관이나 교사들은 "자율동아리 개수가 많다고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아니다"며 "개수보다 '활동 깊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서울 세화여고 자율동아리 ‘NEIS’ 학생들이 가상수업 활동을 하고 있다. /조현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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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연계하려고 급조한 동아리, 면접서 '들통'

자율동아리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반드시 전공과 연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탓에 늦게 희망 학과를 정한 학생들은 고 2 말이나 심지어 고 3 때 부랴부랴 전공 관련 자율동아리를 개설하기도 한다. 올해 서울의 한 사립대에 진학한 한진영(가명·18)양은 "고 2 11월쯤 급하게 생명과학 관련 자율동아리를 만들었다. (인원 채우기에 급급해) 이 분야에 별 관심 없는 학생까지 가입시켰더니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고 3 1학기까지 거의 혼자 활동하고 탐구보고서를 쓰느라 힘들었다. 막상 대입을 치러보니 고 1 때부터 꾸준히 해온 화학 동아리 활동만 열심히 했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입학사정관들은 학생·학부모나 교사가 '전공적합성'이라는 말을 정확히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조효완 서울과학기술대 입학사정관실장은 "고교생이 1학년 때부터 뚜렷한 진로나 희망학과를 결정하기란 어렵다"며 "문·이과 정도의 계열만 결정해 두고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동아리 활동을 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대학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부분은 '지원자가 자기 관심 분야의 학업 역량을 어떻게 키워 왔느냐'하는 점이에요. 관심사에 대해 탐구하며 역량을 키워온 학생은 대학 입학 후 자기 전공 분야에서도 그렇게 공부할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전공적합성을 보여줄 요량으로 자율동아리를 급조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가짓수에 대한 오해도 여전하다. 입학사정관들은 "학생부에 몇 줄 더 적을 요량으로 활동하지도 않을 자율동아리를 만드는 건 오히려 입시에 해가 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자율동아리 활동 내용은 중요한 평가 요소인 만큼 면접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질문'이기도 하다. 이석록 한국외국어대 입학사정관실장은 "면접에선 자율동아리를 몇 명이 어떻게 결성했는지부터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그 과정에서 배운 점은 무엇인지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다"며 "면접장에서 결국 '동아리를 만들긴 했는데 한 번도 활동한 적 없다'고 실토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의 A 대학 입학사정관은 "사실 대학에선 한 학생이 자율동아리를 일년에 3개만 해도 '많다'고 생각한다"며 "학교 공부와 학사 일정을 다 소화하면서 자율동아리를 3개 이상 (제대로) 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율동아리, 1~2개에서 '완성형'으로 활동해야

더 중요한 건 자율동아리가 학생부의 다른 항목과 연계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의 B 대학 입학사정관은 "자율동아리든 수상 기록이든 단독으로는 대입에서 별 영향력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예컨대 물리 자율동아리를 했다면 내신에서 물리 성적이 좋거나 물리 관련 교내 대회에서 수상한 기록, 세부내용 및 특기사항(이하 세특)에서 물리 수업 시간에 열의를 가지고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어야 하는 식이다. 서울 C 대학 입학사정관은 "최근 학종이 '금수저'논란에 휘말리는 건 '자율동아리' 때문이기도 하다"며 "하지만 자율동아리에서 (사교육 힘을 빌린) 소논문 하나를 내놨다고 해서 학종에 유리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입학사정관·진학지도 교사들은 "자율동아리는 한두 개를 '완성형'으로 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예컨대 과학 동아리에서 실험·실습을 했다면, 실험 계획서부터 준비물·사전 정보 수집 과정 등 기초 단계를 잘 다지고, 실험·결과 분석·피드백까지 전 과정을 제대로 거치란 얘기다. 실험에 실패했다면 왜 실패했는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등을 토론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김혜남 서울 문일고 교사는 "수학 동아리를 만들어 놓고 단순히 수능 문제만 풀다 헤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자율동아리에선 (문제·주제에 대한) 탐구 과정, 토론, 발표 등 활동이 구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강조했다.

[오선영 조선에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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