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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외환위기 20년, 끝나지 않은 고통](상)건전성 좋아졌지만 성장은 제자리…‘기업 체질개선’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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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비율·차입금 의존 줄었지만 제조업 매출 증가율 등 ‘뒷걸음’

보유금 쌓아놓고 투자·고용 인색…중국 수출 쏠림·구조개혁 ‘느슨’

“그때야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 빌리기 쉬운 시절이었죠. 부채비율이 800%, 1000%가 돼도 돈이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꿈도 못 꿉니다.”

1996년 신입사원으로 재무팀에서 일했던 한 대기업 임원은 외환위기가 기업들의 재무지표를 ‘온정주의’에서 ‘안전주의’로 바꿨다고 회상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느슨했던 부채비율 관리가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며 엄격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와 투자자들을 비롯해 기업 내부에서도 감시하는 눈이 많아졌고 그만큼 재무건전성과 투명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환란의 경험이 뼈아팠던 만큼 지난 20년간 기업들은 변했다. 이전까지 외형 키우기를 ‘최고 미덕’으로 여겼던 기업들은 일제히 수익성 강화와 재무건전성 확보에 집중했다. 그 결과 우리 기업의 부채비율 등 자산건전성 지표는 몰라보게 개선됐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기업경영분석’을 보면 기업들의 매출액 증가율, 매출액 영업이익률, 부채비율이 모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 및 리스크 관리가 엄격해지고 이를 감시하는 주주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진 것은 외환위기가 남긴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 지표는 개선됐지만, ‘안정성’에만 치중하고 성장을 위한 전략에는 소홀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부채비율은 1997년 396.5%에서 올 2분기 말 66.7%까지 낮아졌다. 같은 기간 차입금 의존도 역시 54.22%에서 20.0%로 개선됐다. 기업의 빚 갚는 능력이 몰라볼 정도로 향상된 셈이다. 외환위기의 핵심 기제였던 부실금융기관들이 대거 정리되고 부실채권 비율도 1999년 8.3%에서 2001년 2.9%로 감소했다. 100대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127조원에 달한다.

반면 성장성과 수익성 지표는 정체되거나 나빠졌다. 제조업 전체 매출액 증가율은 1997년 11.02%에서 올 상반기 8.4%로 뒷걸음질쳤고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당시 8.25%에서 지금 8.4%로 제자리걸음이다. 외환위기를 겪은 기업들은 당시의 ‘트라우마’로 쌓아놓은 보유금을 풀지 않고 있고, 전반적인 투자와 고용 또한 위축된 상황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수출 대기업 의존형 경제구조는 심화됐다. 외환위기 당시만 해도 대중국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97%로 3위였지만 지금은 23.4%로 부동의 1위다. 이 때문에 ‘사드 갈등’이란 한 번의 바람이 단번에 위기로 바뀌기도 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바싹’ 조여맸던 구조개혁도 느슨해지며 기업의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다시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높다. 산업연구원 자료를 보면 ‘좀비 기업’으로 불리는 한계기업이 2011년 1736개(9.34%)에서 2015년 2359개(12.7%)로 늘었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다. 이들은 금융권의 자금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사이 산업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해졌고 자동차, 조선, 화학, 철강 등 한국의 주력 산업들은 중국의 추격을 당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나 SK 등 과감히 혁신에 나선 일부 기업들은 성장을 계속하며 글로벌 대열에 올라섰지만 조선과 철강, 자동차, 해운 등 경제와 수출을 이끌었던 주력 업종들은 수익성 악화와 성장동력 실종을 맞으며 위기에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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