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 갈등의 근원은 결국 용산 ‘v2’(김건희 여사) 공천 때문?
김건희 여사가 지난 9월 22일 2박4일 간의 체코 순방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영접 나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김 여사를 바라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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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의 ‘처지’를 두고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가 내린 진단이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용산 대통령실과 갈등이 드러나면서 순탄치 않은 상황이었지만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대표가 됐다. 곧 취임 100일인데 지금 한 대표는 진퇴양난의 처지가 된 것 같다.”
안 대표는 또 이렇게 말했다. “당을 장악하는 것도 실패했고, 당과 용산의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 운신의 폭도 좁아진 데다가 돌파구도 찾지 못하는 최대 위기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때 한동훈 당시 후보는 “김건희 특검은 불가”, “채 상병 특검은 야당이 아닌 대법원과 같은 ‘제3자’가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특검법”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선 후 한동훈 대표는 채 상병 특검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지난 8월 18일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한동훈이 주장한 3자 특검법을 수용하겠다”며 한 대표의 답을 요구하자 같은 날 오후 “최근 드러난 제보 공작 의혹까지 수사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당 내외 의견을 반영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이 고작이다.
앞서 한 대표는 지난 7월 23일 당대표 당선 후 열린 기자회견 때도 “3자 특검법 안을 제시한 후 상황변화를 감안해 당내 민주적 절차를 통해 토론해보겠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가 반복해 언급한 ‘절차를 거친 토론’이 지금까지 국민의힘에서 열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 대표, 운신의 폭 좁아져 최대 위기
“나는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하면서 ‘한 대표는 자기와 경쟁했던 사람을 한명도 안 쓸 거’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진짜로 그 이후에 내게 전화 한 통도 없다. 그래서 내가 독대 신청 메시지를 썼다. 역시 연락이 안 온다. 아무한테도. 단 한 번도 나에게 ‘너 왜 그랬나, 그런 말 하고 다니지 마라’ 뭐 그런 말도 안 한다. 이 당에서는.”
지난 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이상규 국민의힘 성북을 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 22대 총선이 끝난 뒤 만들어진 총선 백서 특위 위원도 맡았었다. 그는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7월 초 ‘지난 총선 당시 국민의힘 총선 여론조사에서 총선과 무관한 한동훈 개인에 대한 이미지 조사를 했다’는 주장도 했다.
“내가 보기에는 소위 ‘친한’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소통도 없다. 최고위원과 한 대표 쪽 스피커 역할을 하는 인사들도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10월 1일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가 폭로한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현 SGI서울보증 상근감사위원) 통화 녹취록 파문은 당내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10월 2일 채널A에 출연한 신지호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은 “김대남이 (지난) 7월 10일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에게 보도를 사주해 이틀 뒤에 나온 ‘한동훈 당비 70억원 횡령 의혹’ 기사는 총선 패배 후 총선 백서팀이 조사 과정에서 지득한 내용”이라며 “대외비였던 내용을 김대남이 어떻게 알게 됐는지를 짚는 것도 핵심포인트”라고 주장했다.
당비 횡령이란 총선 여론조사비 중 일부를 총선 여론조사가 아니라 한동훈 개인의 이미지 조사에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즉 대외비 내용을 알 수 없었던 김대남 행정관의 ‘보도 사주’는 한동훈 당대표 당선을 저지하려는 배후세력의 공작이었다는 주장이다. 신 부총장은 한동훈 당대표 취임 뒤 여러 종편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한 대표의 입장을 대변해온 대표적인 ‘친한 스피커’다.
한 대표는 10월 2일 아침 페이스북에 “현재 정부투자 금융기관 감사인 사람이 지난 전당대회 당시 좌파 유튜버와 직접 통화하면서 저를 어떻게든 공격하라고 사주했다고 한다”며 “국민과 당원들께서 어떻게 보실지 부끄럽고 한심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상규 위원장이 “친한 세력 사이에도 소통이 없는 것 같다”라고 주장한 이유는 김대남이 언급한 한동훈 이미지 여론조사 문제는 이미 그가 최고위원 선거에 나왔을 당시 7월 초부터 공개적으로 주장한 내용인데도 신 부총장이 “해당 내용은 아무도 몰랐던 대외비”라는 사실과 어긋난 주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당내 갈등으로 번진 ‘김대남 녹취록’ 파장
“전달) 한동훈 건은 지금 조중동과 한동훈 지지 종편 패널과 유튜버들의 전쟁이 됐습니다.”
지난 7월 3일 오전 당대표를 지낸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실 기자 카카오톡 단톡방에 당직자로 보이는 사람이 올렸다가 곧바로 삭제한 글의 앞부분이다. 다른 쪽에 보고 형식으로 올리려던 글이 ‘배달 사고’로 엉뚱한 단톡방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글의 앞부분에선 지금 논란이 되는 여론조사 문제가 언급돼 있다.
“…이상규 위원장이 폭로한 한동훈이 자기 이미지 조사를 여론조사와 빅데이터에, 그것도 세금인 여연 조사에 얹었다는 말에 다들 폭발하고 있고, 특히 책임 당원들이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뒷부분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대목이다.
“또한 국민의미래(위성 정당)의 데이터를 비롯해 아무런 자료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증거 인멸이 한동훈(비대위원장) 때 이뤄진 것도 큰 건이다. 500명이 비례 심사 신청을 했는데 인터뷰 내용은 물론 인적 자원, 돈 쓴 것이 제로 상태라는데 믿기 어려울 정도다. 심사비만 해도 인당 500만원이면 장애인·청년 할인을 감안해도 23억원 정도 된다. 그 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만 밝히면 한동훈은 배임·횡령이고, 홍영림(여의도연구원장)과 함께 범죄단체 구성도 가능하다.”
선거 때 사용된 공천심사 자료는 사적 개인정보와 확인할 수 없는 비방이나 모략 정보도 많기 때문에 폐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주목되는 건 아직 ‘당대표 한동훈’이 선출되기도 전에 당내에서는 한 대표에 대한 조직적 반대 흐름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한 대표의 책임이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것이 지난해 12월부터이니까 이제 막 (당선된) 당대표로 보기도 힘들다. 당 지지율 하락 책임을 전부 윤석열 정권의 실정 탓으로 돌릴 수 없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의 말이다. 앞서 리서치뷰의 9월 말 정기조사나 한길리서치·CBS의 9월 정기조사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국민의힘 수치는 모두 하락세를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평가뿐 아니라 한동훈 당대표직 수행평가에 대한 긍정률(한길리서치), 범여권 대권주자 적합도(리서치뷰) 모두 1~4%포인트 이상 하락추세가 뚜렷하다. 채 100일도 안 돼 당대표 선출의 컨벤션효과가 꺼진 것에 대해 홍 소장은 이렇게 풀이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절반이 남아 있는데, 그나마 소통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20년을 같이 검사생활을 했던 한동훈이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그런데 거꾸로 두 사람의 관계가 당·정 갈등의 핵심 원인이 돼버린 것이다. 특히 박근혜 탄핵을 경험한 보수정당 지지자들은 당·정 갈등이 권력 재창출의 최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권 운명공동체로 서로 조율하고 협조하는 모양새를 기대하고 그를 당대표로 뽑은 것이다. 내가 보기엔 한동훈이 워낙 독특하고 설득이 안 되는 윤 대통령의 성격을 뻔히 알면서 스스로 대화의 문을 닫고 성급하게 정치적 차별화를 시도한 데 모든 원인이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지지율이 회복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덧붙였다.
“여론조사는 후행지표다. 윤석열 대통령과 별도로 올라가면 모르는데 동반 하락하고 있다. 이 상황이 한두 달 지속하면 무슨 여론조사를 해도 무조건 진다. 지표상으로 성과를 못 내면 ‘한동훈 대망론’은 흐트러지고 한동훈을 내세워 다음 지방선거를 이길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확산할 것이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10·16 재보궐선거부터 문제다. 안상수 전 대표가 무소속으로 인천 강화군수에 출마했는데, 보수 텃밭이 흔들린다면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당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3일 국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를 접견, 여야의정 협의체 등 의료 문제와 관련해 한 총리의 발언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2024.10.3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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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갈등은 한동훈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시작됐다.
국민의힘 주변에서는 비례후보 논의가 시작도 되지 않은 지난해 12월부터 “모 라디오·케이블 방송 사장인 P씨(여성), 우파 유튜버 K씨를 V2(김건희 여사)가 비례로 강력하게 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이야기는 모 비대위원을 통해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의 귀에도 들어갔다. 다음은 지난 3월 20일 기자에게 해당 비대위원이 해준 말이다.
“참고 참다가 한 위원장에게 열흘 전쯤 전화했다. 문제 되는 두 사람의 현역 의원은 공천하면 안 된다고 직언했다. 안 받아들여지면 비대위원을 그만둘 각오였다. 한 위원장의 반응은 한 사람은 ‘경선에서 떨어진다’였고, 나머지 한 사람을 떨어뜨리면 ‘(용산과) 전쟁이 시작된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 둘 다 공천을 받았다. 이때 소문에서 김 여사가 비례공천을 약속했다는 P씨와 K씨 이야기도 했다. 이 사람들이 지난해 말부터 비례에 자기가 됐고, 당내 특정 중진으로부터 확약 받았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했더니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비례에서는 입김을 차단해보겠다’고 답을 받았다.”
여사 공천 소문에 “입김 차단하겠다”
결과를 놓고 보면 현역 의원들은 모두 공천을 받았고, ‘여사 비례공천 인사’로 회자한 두 사람은 한 비대위원장이 확정한 비례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공개된 이른바 ‘읽씹문자’ 논란은 표면적으로는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한 김건희 여사의 사과 여부를 둘러싼 대립이다. 하지만 지난 비대위원장 시절부터 2~4차례에 걸쳐 불거진 윤·한 갈등을 포함해 결국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V2’가 주도하는 용산 공천에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것 같다. 공천 문제가 윤석열과 김건희, 한동훈 사이가 틀어진 결정타가 된 거로 보인다. 용산이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으니 한동훈이 딴마음을 품은 것 아니냐 의심한 것이다. 이철규 파동도 그래서 난 것이고, 지금 김영선 공천을 둘러싼 논란도 결국 그것이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의 말이다. 문제는 한동훈의 지난 3개월을 보면 앞으로도 그 갈등을 풀 능력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친한 성향 의원이 한때는 25명이라는 말이 돌았는데 지금은 두 자릿수가 안 되는 것 같다. 용산이 ‘한동훈 고사 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한동훈에 가까이 갈 수 없는 분위기, 다른 말로 ‘한동훈은 폭탄’이라는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문제는 한동훈이 이걸 돌파할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기껏 의존하는 것이 기존 검사 시절에 하던 여론몰이 외엔 다른 무기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그런 대응이 오히려 더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용산 쪽에 서서 생각해보면 그나마 의료개혁 문제가 성과인데 한동훈은 여·야·의·정 협의체를 승부수로 보면서 의사정원 문제 결정 유보를 들고나온 것이 결정적인 실수로 보인다”며 채 상병 특검법이 한동훈 대표의 마지막 승부수가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사실상 당대표 역할은 끝났다고 본다. 야권에서는 특검과 탄핵을 추진하지만, 강경보수는 여전히 위기의 윤석열 정권을 도와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의대 증원 협의는 물 건너갔기 때문에 대통령이 버티면 한동훈 대표가 당대표직을 던지면서 채 상병 특검법으로 승부수를 띄울 것 같다.”
하헌기 새로운소통 연구소장은 “결국 지지율이 관건인데 대통령 지지율이 10%로 내려앉으면 올해 말이든, 내년이든 국민의힘에서 대통령 출당을 요구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며 “그럴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국민의힘 의원들로서는 섣불리 한동훈 배제 라인에 서지 못하고, 또 한동훈 지지율이 유의미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망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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