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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Health] 암 발병률 국내 1위 갑상선암, 과잉진료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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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직장인 신 모씨는 매년 회사가 제공하는 건강검진 선택 항목 중 갑상선 초음파를 선택한다. 3년 전 검진에서 갑상선에 낭종과 결절이 있다는 결과를 받았기 때문이다. 신씨는 "갑상선암은 진행 속도도 느리고 생존율도 거의 100%라고 듣긴 했지만 낭종이 있다니 계속 불안하다"며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갑상선 초음파를 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 얼마 전 유명 가수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와 아내 간병을 위해 텔레비전 버라이어티쇼에 출연하게 됐다던 가수의 인터뷰가 화제가 된 가운데, 고인이 갑상선암으로 투병했다는 사실도 관심을 모았다. 뉴스를 접한 많은 사람이 "갑상선암은 진행 속도도 느리고 대부분 완치된다고 하던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매일경제

'착한 암' 혹은 '거북이 암'.

다른 암에 비해 진행 속도가 느리고 생존율이 높다는 의미로, 갑상선암을 수식하는 별칭들이다. 갑상선암은 전체 암 중 발병률 1위지만, 5년 후 생존율은 100%에 달한다. 갑상선암 진단과 수술은 최근 몇 년간 의료계 안팎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일각에서는 상당수가 갑상선암은 암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과잉진단·수술 논란에 휩싸인 갑상선암에 대해 알아본다.

국가암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갑상선암 환자는 1999년 3325명에서 2013년 4만2541명으로 급증했다. 15년 새 무려 12.8배가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전체 암 환자는 10만1000명에서 22만5000명으로 2.2배 증가했다. 다른 암 발병이 주춤한 사이 갑상선암은 2009년부터 암 발병률 1위를 지키고 있다. 특히 국내 갑상선암 환자 10명 중 8명이 여성이라는 것도 눈에 띈다. 2008년 국제암연구소 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갑상선암 환자는 세계 평균의 10배에 달한다.

갑상선암의 인구 10만명당 사망률은 1명 이하다. 2009~2013년을 기준으로 5년 이상 상대생존율은 이미 100%를 넘어섰다. 2014년 갑상선암 과다진단·수술 논란이 제기된 배경이다. 당시 예방의학 전문의와 종양학 전문의 등이 모인 '갑상선암 과다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연대'가 만들어지는 등 사회적 파장이 일었고, 이후 갑상선암 수술은 대폭 감소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집계한 갑상선암 및 갑상선 수술 환자는 2012년 4만1306명에서 2016년 2만3832명으로 42.3%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 건강한 성인은 갑상선암 조기 검진이 필요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예방서비스태스크포스(USPSTF)라는 단체는 지난 5월 '목에 혹이 있거나 목소리가 변하는 등 의심 증상이 없는 성인이 갑상선암 진단 검사를 받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확률이 높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국제학술지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발표했다. USPATF는 예방의학 전문의와 역학조사관 등으로 구성된 비영리 조직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최근 10년간 갑상선암 조기 검진이 확대되며 갑상선암 발병률이 연간 4.5%씩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3년 미국에서 갑상선암 확진을 받은 환자는 인구 10만명당 15.3명이었지만, 이들 중 98%가 최소 5년 이상 생존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조사 결과 수술 없이 추적 관찰만 해도 되는 환자까지 수술받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갑상선암 조기 검진이 과잉 진단·진료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제니퍼 린 미국 카이저퍼머넌트보건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이 연구에서 "갑상선암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일상적인 검진은 받지 않는 편이 좋다"고 권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제기됐다. 박종혁·김소영 충북대 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갑상선암 급증은 '저부담-저수가-저급여'로 이어지는 보건의료 시스템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 논문은 지난 2월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게재됐다. 박 교수와 김 교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의 보건의료 제도 설명 보고서와 암 발생 통계, 건강 통계를 활용해 갑상선암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 공공 부문 지출이 낮고 진료 행위별 수가제를 운용하는 국가일수록 갑상선암 발병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진료비 지불 시스템은 의사와 간호사, 약사의 의료 행위마다 일일이 가격을 매겨 지급하는 이른바 '행위별 수가제(Fee-for-Service)'가 기본이다. 이런 행위별 수가제 시스템에서 수익성을 확보하려면 서비스 제공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의료진이 원하지 않아도 시스템 때문에 불필요한 진료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들 교수는 대표적으로 갑상선암을 지목하며 현재의 '저부담-저수가-저급여' 보건 체계를 적정 단계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갑상선암 유행은 명백한 과잉진단의 한 예로, 이는 결국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좋은 의료정책은 의사가 일상의 업무를 수행할 때 의료시스템이 잘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저부담-저수가-저급여 체계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우리나라 보건의료 시스템은 짧은 기간에 전 국민 건강보험 구축, 선진국 못지않은 건강지표 등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면서도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갑상선암 급증 등과 같은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만큼, 국가가 공공지출을 늘리고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는 등 보건의료에 대한 공적책임을 강화하고 수정·보완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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