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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세금 더 쓰면 이기적… 수색 접는 게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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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네 가족, 목포신항 떠날 예정… 내일 기자회견]

"선체 수색 사실상 끝나… 곧 겨울, 바닷속 뒤지기 어려워… 이젠 국민들에게도 미안해"

18일 미수습자 5명 합동 위령제… 안산시는 별도 '이별식' 준비

권오복(63)씨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동생과 제수(弟嫂), 조카를 잃었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한달음에 내려갔다. 처음엔 모두 살려서 데려가겠다 생각했다. 제수의 주검을 수습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동생(권재근)과 조카(혁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신만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렇게 팽목항과 목포신항 컨테이너 임시 숙소에서 지낸 지 3년7개월. "더 이상 남아 있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마어마한 세금이 들었는데, 또 해달라는 게 이기적인 것 같고…." 권씨는 "더 늦기 전에 수색을 계속해 가족을 찾겠다는 마음을 접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들이 목포신항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참사 1300여일 만이다. 미수습자는 권씨 부자를 포함해 단원고 학생 남현철·박영인군과 양승진 교사 등 5명이다. 권씨뿐 아니라 양 교사의 아내 유백형(56)씨도 본지에 "목포신항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남군과 박군 가족은 안산시 관계자에게 철수할 뜻을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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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세월호가 거치 돼 있는 전남 목포신항에서 참배객들이 세월호 미수습자를 추모하고 있다. 노란 리본이 달린 추모 공간에 권재근·권혁규 부자(父子), 단원고 양승진 교사, 단원고 학생 남현철·박영인군의 사진이 걸려 있다(사진 왼쪽부터). 침몰 후 팽목항에 이어 목포신항을 지켰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곳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힐 예정이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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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월호가 목포신항으로 들어온 지난 4월 11일 팽목항에서 목포신항으로 거처를 옮기고 지금까지 수색 작업을 지켜봤다. 선체 인양 후 지난 8월까지 고창석 교사를 비롯해 조은화·허다윤양과 이영숙씨 유해가 발견됐다. 이후 추가로 나온 유해는 없다. 세월호 화물칸·기관실 수색까지 마쳤다. 세월호 선체 내부를 다시 수색하거나 침몰 지점 바다 밑을 뒤져야 한다. 해수부 세월호현장수습본부는 최근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수색을 하지 않은 선체 내 보조 기관실 등은 사람이 직접 들어가서 수색하기 어렵다. 선체를 해체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추가 수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가족들 사이에서 "선체 내에선 더 이상 유해가 나올 것 같지 않고, 곧 겨울인데 수중 수색을 하기는 어렵지 않겠나. 계속 버티면 내년으로 넘어가는데 국민들 보기 미안하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가족들이 수색 포기를 결정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양승진 교사의 아내 유씨는 "가족을 찾고 싶어서 3년 넘게 버틴 사람들인데,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런데 가족과 주변 사람 모두 많이 지쳤다. 안 아픈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권씨는 "처음 철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야속한 마음이 들어 못 간다고 버텼지만, 나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생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여섯 살이던 권씨의 조카 혁규군은 아버지·어머니·여동생과 함께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사 가는 길에 참사를 당했다. 한 살 아래 여동생만 구조됐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던 권씨는 동생과 조카를 기다리느라 가게 문을 닫은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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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유씨와 권씨는 진도 팽목항을 찾아 방파제를 둘러보고 진도 군민들을 찾았다.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권씨는 "사고 현장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뒤 죄책감과 착잡함이 밀려들었다. 3년 넘게 버티게 해준 진도군민과 자원봉사자들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목포신항을 떠난다는 의사를 밝힐 계획이다. 18일엔 목포신항에서 합동 위령제가 열릴 예정이다. 안산시는 18~20일 사흘간 안산시민인 남현철·박영인군과 양승진 교사의 '이별식'을 안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진행한다. 앞서 지난 11일엔 고창석 교사의 장례식이 열렸다.

12일 목포신항은 적막했다. 철조망에 매달린 노란 리본 수백개는 바닷바람에 빛이 바랬다. 몇 장 남지 않은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 같은 현수막도 빛이 바래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머물던 컨테이너 12개는 절반이 텅 비어 녹슬어 있었다. 모두 떠나고 네 가구만 남았기 때문이다. 미수습자 가족을 위로했던 법당도 문이 닫혔다. 법당 앞엔 연등 2~3개만 바람에 나뒹굴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부두를 거닐며 멍하니 바다만 바라봤다. 권씨는 "가족이 너무 비극적으로 갔다. 남은 가족들의 삶도 힘겹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겁이 난다"고 했다.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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