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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여행] 그곳에서…서른셋에 멈춘 그의 노래를 다시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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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여행

2010년 방천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로 만들어져

길이 350m 옹벽에 80여개 작품 있어

골목 곳곳 '가객'의 추억 가득

김광석 유품 전시 중인 '스토리 하우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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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바람에/날려간/나의/노래도/휘파람/소리로/돌아/오네요/(중략). 먼지가/되어/날아가야지/바람에/날려/당신/곁으로~.’ (김광석 1996년 라이브앨범 수록곡). 먼지처럼 떠나간 사람은 말이 없는데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갑론을박이다. 젊디젊은 나이에 요절하며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난 故 김광석(1964∼1996년)의 이야기다. 그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애달파하고, 지금까지도 못 잊고 회자하는 것은 아마도 그가 남긴 정서의 유산이 크기 때문이리라. 그런 ‘가객’에게도 추억의 유효기간은 아마도 없는 모양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언 20여 년.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가 남긴 음악과 추억은 고스란히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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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으로 다시 살아난 좁고 허름했던 골목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옆 좁은 골목. 이 골목의 정식 명칭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하 김광석 길)이다.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신천과 국채보상로가 만나는 수성교 옆 둑길인 방천길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이 길은 해가 지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방천시장 상인들이 버린 쓰레기만 쌓여 있던 어둡고 냄새나는 뒷골목이었다. 이 골목에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발단은 전통시장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고 문화예술장터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뜻을 담은 ‘문전성시프로젝트’였다. 6·25전쟁과 흥망성쇠를 함께 한 방천시장을 살려 보겠다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바로 김광석 길이었다.

방천시장은 한때 대구 3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규모도 대단했다. 시작은 1945년 광복 후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 귀국한 이들이 호구지책으로 장사를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고 전해진다. 이름도 신천 제방을 따라 길게 장이 섰다고 해서 ‘방천시장’으로 불렸다. 이후 1960년대부터 싸전(전통 재래시장에서 쌀과 그 밖의 곡식을 파는 가게)과 떡전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1990년도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그 규모가 커 대구 3대 시장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11팀의 작가들이 뭉쳤다. 김광석이 이 골목 인근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까지 살았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김광석의 삶 자체가 너무 극적이라 예술가의 영감을 끌어낸다는 점, 당시 젊은이는 물론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두루 좋아하는 대중성과 지속성을 갖춘 스타였다는 점, 여기에 서민들의 삶과 공통점이 많아 전통시장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 등이 골목과 잘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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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골목을 환히 비추다

차디찬 콘크리트 골목벽에서 노래 ‘잊혀지는 것’이 울려퍼진다. 골목 벽에는 활짝 웃으며 기타를 치는 김광석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골목이 바로 ‘김광석 거리’다. 길이 350m, 높이 3m의 옹벽에 김광석의 노래를 테마로 한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로 김광석이 다시 태어나 있었다. 거리에는 김광석 그림을 비롯해 사진, 노랫말을 담은 작품 80여점이 있다. 또 애절한 선율로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번갈아가며 흘러나온다. 마치 김광석 음악감상실, 김광석 갤러리를 들어선 듯하다.

북쪽 입구에 자리한 기타를 치는 동상은 이 거리의 시작점이자 상징물이다. 여기서부터 스토리하우스까지 길은 길게 이어진다. 김광석 거리를 본격적으로 걷기 전 입구에 자리한 방송 부스를 찾았다. 관광객이 여기에 사연과 곡목을 신청하면 거리 곳곳에 설치한 스피커로 들려주기 때문이다. 동물원 시절 김광석이 불렀던 ‘거리에서’를 신청하고 걷기 시작한다. 중간쯤에 이르니 ‘이등병의 편지’를 이미지화한 웹툰이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12개 장면으로 구성된 웹툰은 머리 깎고 입대해 구보하고 사격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옆으로 눈길을 돌리면 길이 10m의 큼지막한 벽화가 버티고 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이 벽화는 머리카락이 센 부부가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철제 난간에 기댄 채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을 담고 있다.

골목길 군데군데 들어선 조형물도 볼거리를 더해준다. 김광석 얼굴 부조상, 철사로 오선지를 만든 악보, 기타 모양을 형상화한 벤치 등도 묵묵히 그의 음악세계를 웅변해 주고 있다. 실제 김광석 키(165㎝) 높이로 제작한 동상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김광석이 이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으며 기타 치는 벽화도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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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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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입구에 위치한 ‘김광석 스토리하우스’. 김광석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김광석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생전 사진, 악기와 악보, 손때 묻은 하모니카, 기타, 수첩과 다이어리 등 김광석의 유품 1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1층에는 김광석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고 관련 상품을 판매한다. 김광석이 당시 거주했던 집의 거실 등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2층에는 유품존·영상존·뮤직존·마틴기타존 등 있다. 김광석이 생전 사용했던 자필 악보와 레코드판(LP) 앨범·공연포스터·친필메모 등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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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기타 존에는 김광석 20주기를 맞아 세계적인 통기타 회사인 마틴에서 제작한 ‘김광석 헌정 기타’도 있다. 마킨 기타는 ‘음악계에 미친 영향력’을 기준으로 전 세계 음악인을 상대로 헌정 모델을 만들어 왔다. 존 레논, 에릭 클랩튼, 엘비스 프레슬리, 에드 사런 등이 마틴의 모델이었다. 당시 마틴 측은 김광석 탄생 52주년을 맞아 52개의 기타를 제작했는데, 그중 2대를 유가족에 기증했다. 기타는 김광석이 생전 즐겨 사용하던 ‘M-36’모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공식명칭은 ‘M-36 김광석 트리뷰트 에디션’. 가격은 약 700만 원 선이다.

평일 낮에도 추모객과 관광객은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방문객들은 포스트잇에 추모 글을 남기며 그를 기억하고 있다. 전시대에는 ‘하늘에서 행복하길’,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등의 추모객이 남긴 정성 글씨가 적혀있다. 그가 남기 사진 중 그보다 더 짧은 인생을 살고 간 딸 서연 양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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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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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잘곳= 대구서 가장 핫한 숙박업소는 게스트하우스인 ‘더 스타일’(053-214-6116)이다. 중구 서성로에 위치해 있다. 보유하고 있는 침대 수만 56개로 대구 도심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그렇다 보니 단체 배낭여행객이 선호한다.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침대는 벙커 형식으로 돼 있고, 커튼과 LED 등도 있어 사생활보호도 가능하다. 건물 1층은 카페와 놀이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외국인 게스트하우스 스태프가 함께 대구여행을 즐기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최근에는 한옥 게스트하우스인 ‘더 한옥&스파’도 오픈해 운영 중이다. 2인실 5만원, 4인실 3만원, 도미토리 2만 5000원. 서성로 14길 26번지(서내동).

△먹을곳= 방천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몇 천 원짜리 배추전, 정구지전(부추전) 등 작은 주전부리를 파는 주점부터 오너셰프의 자그마한 식당, 으리으리한 와인레스토랑까지 다양한 레스토랑이 여행객에게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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