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J.D.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흐름출판 펴냄
‘힐빌리’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뜻한다. 이 책의 저자 J.D.밴스는 힐빌리이면서 동시에 예일 로스쿨 출신의 전도유망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저자는 약물 중독에 빠진 엄마와 일찍이 양육권을 포기해버린 아빠, 가난과 가정 폭력, 우울과 불안을 모두 딛고 일어나 현재의 성공에 이르렀다. 모두가 궁금해 할 그의 인생 여정과 그를 둘러싼 힐빌리의 세계를 솔직하고 상세하게 이 회고록에 담아냈다.
러스트벨트는 애팔래치아 산맥에 가로막힌 척박하고 고립된 환경과 가난에 갇혀 미래를 포기해버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사회 양극화에 따른 소외 계층의 증가와 가정의 해체, 희망을 놓아버린 미래에 대한 체념이 만연하다. 저자는 자신의 암담한 어린 시절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좋게 말해 복잡한데, 엄마는 거의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를 키워준 외조부모님은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친척들까지 포함해도 우리 집안에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거의 없다. 통계적으로 나 같은 아이들의 미래는 비참하다. 운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하는 정도고 운이 나쁘면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다. (…) 나도 비참한 미래를 앞둔 아이들 중 하나였다.”
약물 중독에 빠져 끊임없이 정신적ㆍ신체적 폭력을 휘둘렀던 엄마와 돈 때문에 양육권을 버린 아빠, 엄마 곁을 스쳐간 수많은 아버지 후보자들 때문에 저자는 어린 시절 늘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다. 저자가 “집안의 유일한 참된 어른”이라고 부르는 누나,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부르는 힐빌리만의 단어인 ‘할모’와 ‘할보’ 덕분에 그는 비참한 현실에 매몰되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할모의 곁에서 안정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에 자원입대했고, 오하이오주립대학교를 거쳐 예일 로스쿨에 들어갔다. 그는 이 과정에서 ‘힐빌리 문화’로부터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분리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목표의식,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힐빌리들이 겪는 불운한 인생에 대해, 그들의 책임이 얼마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계층 간의 문화적, 사회적 단절은 계층 간의 이동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양극화된 세상은 고립되고 소외된 계층을 현혹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의 토대가 된다. 이들 힐빌리는 지난 미국 선거에서 가능성이 낮다고 여겨졌던 트럼프의 당선을 이끌어낸 일등공신으로 평가받았다. 이전까지는 그저 사회문제이자 복지 제도의 대상이기만 했던 이들을 미국 내에서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최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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