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장 출신 정흥조씨 요양원 등 찾아 음악봉사활동
한평생 교직에 몸담아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 받았다고 생각
2015년 8월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난 정흥조(64)씨는 퇴직한 뒤 더 바빠졌다.
거의 날마다 집 근처 연습실을 찾아 밴드 단원들과 호흡을 맞춘다.
60세 안팎의 은퇴자와 일반인 등 10여 명이 모여 만든 밴드에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이나 몸담고 있다. 백운기획과 대경상록캄보밴드다.
밴드 연습 중 |
최근까지 대구 인근 경산에서 캄보밴드 드럼 주자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너무 바빠 밴드 활동을 2개로 줄였다.
가끔은 김천 팝스 오케스트라 공연에 가서 플루트 연주를 해 주기도 한다.
그는 두 밴드에서 단장 등 중책을 맡아 연습과 공연을 이끌고 있다.
40년 가까이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 그가 밴드를 이끌게 된 것은 그리 이상할 게 없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가수를 꿈꿔왔기 때문이다.
1953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정씨는 중학교 시절부터 가수 꿈을 키웠다.
대구에서 유학하던 고교 1학년 때 고향에서 신인가수 선발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뒤도 보지 않고 달려가 1등을 한 적도 있다.
교육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나이트클럽 등 흔히 말하는 '업소'를 돌며 아르바이트 겸 가수로 활동했다.
초등 교사로 처음 부임한 1979년에는 정식 음반을 취입하기도 했다.
'망향'과 '겨울에 떠난 여인' 2곡을 세상에 내놨다.
하지만 순수 아마추어나 다름없어 세상 사람의 관심을 끌기엔 한계가 있었다.
음반 취입이 워낙 큰 비용이 드는 일이라 더는 할 수 없었고 가수 꿈도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나 음악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아 음악대학원에 진학해 이론과 실기 공부를 병행했다.
지하철역에서 재능 기부하는 정흥조씨 |
가장 자신 있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는 플루트다.
1988년 대구교대 안동부설초교에 있으며 오케스트라를 꾸려 지도하다가 플루트의 오묘한 소리에 매료됐다.
그 뒤 30년간 갈고 닦은 플루트 연주 솜씨 덕에 요즘은 공무원연금공단이 운영하는 상록아카데미과정에서 플루트 지도교수라는 직함으로 일하고 있다.
틈틈이 배운 드럼과 통기타 연주 솜씨도 프로 연주자 뺨칠 정도가 됐다.
그가 매월 2∼3차례 밴드를 이끌고 주로 찾는 곳은 양로원, 요양원, 노인복지센터 등 어르신을 위한 공간이다.
색소폰, 드럼, 기타, 트럼펫, 키보드 등이 어우러진 대중가요가 그의 지휘 아래 울려 퍼지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까지 흥겨운 분위기에 젖어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슬픈 곡조가 흘러나오면 눈물을 흘리는 어른도 적지 않다.
주로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해변으로 가요', '안동역에서', '친구여' 등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팝송, 클래식 등 다양하다.
밴드 명성이 점점 알려져 올해 여름에는 대구 치맥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도 생활문화축제 등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부름을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제자라며 인사를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노인복지회관서 노래하는 모습 |
정씨와 밴드 단원들은 무보수로 활동한다.
취미 겸 봉사활동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한평생 교직에 몸담은 사람으로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씨는 "오랫동안 나라 혜택을 입었으니 이제는 사회에 되돌려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음악 봉사활동으로 살아가는 인생 2막이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다"며 웃음을 지었다.
yongm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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