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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빅데이터로 세상읽기] 우리 사회의 ‘분노’, 누가, 그리고 무엇을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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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로 세상읽기] 우리 사회의 ‘분노’, 누가, 그리고 무엇을 대상으로?

한동안 ‘보복운전’이 연일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적이 있었다. 도로 위에서는 여전한 일이겠지만 관련 보도는 줄어든 상황이다. 보복 운전이 회자되면서 ‘분노 조절 장애’라는 증상도 쉽게 이해 가능한 개념이 되었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그 정도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해 표출되어 나타나는 성격 장애를 의미한다. 장애라는 말 속에 내포되어 있듯이, 분노는 일반적이지만 그 조절은 모두에게 가능한 것은 아닌 것이다.

최근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은 그 전모가 어느 정도 밝혀졌음에도 여러 의문이 남아 있다. 그런 무자비한 폭력을 가능하게 한 분노는 무엇 때문에 발생했고, 가해 학생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방법은 폭력 밖에 없었는지. 주위에 있었던 다른 학생들은 당시 상황 속에서 또 다른 분노를 느끼진 않았는지 말이다. 사건을 접한 사람들의 분노는 소년법 폐지 주장으로 이어지며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 하다. 공분(公憤)이라 불리는 또 다른 분노가 분출되고 있다.

분노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바가 성취되지 못할 때 생겨난다. 다만, 사람마다, 사회마다 ‘당연’의 기준이 다를 수 있기에 분노의 생성과 발현은 예기치 못할 때가 많다. 개인 혹은 한 사회가 나타내고 있는 분노의 양상, 즉 누가 무엇을 대상으로,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면 가치의 기준은 물론 갈등과 대립의 지점이 명확해진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 간에 공감을 통한 통합을 모색한다면 누군가의 분노에 기반한 갈등과 대립의 지형 파악은 충분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번 빅데이터로 세상읽기에서는 ‘분노’를 키워드로 하여 우리 사회 속에서 표출되고 있는 분노의 양상과 내용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이명박 정부 이후 분노포함 기사건수 급증

먼저 ‘분노’를 포함하고 있는 기사의 건수를 연도별 추이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간의 연재를 통해 기사에 대한 데이터 분석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모든 매체를 포함하여 자료를 활용했지만, 이번 분석에 있어서는 한국일보의 기사만을 대상으로 살펴보았다. 그 이유는 특정 매체의 경우, 분노와 관련한 키워드가 연예 분야에 집중되어 사회 일반에서의 양상을 살펴보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분노를 포함하고 있는 기사의 생산 추이는 그림에 보여지듯, 전반적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를 나타내다가 2008년과 2011년, 그리고 2013년에 가파르게 증가함을 알 수 있다. 2008년과 2013년은 새로운 정부의 시작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분노의 주체와 그 대상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추출된 데이터에서 차별적 특성을 갖는 시기별 연관어 분석을 실시하였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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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세 가지 분석시기, 즉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인 요소는 분노의 주체가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내용적으로는 조금 다른 점도 존재한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는 사람들이나 국민들, 시민들, 네티즌들 등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구성원이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가 금년도 뉴스에 있어서는 가장 많이, 그리고 비중있게 언급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함께 분노의 전파과정에서 온라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다.

다음으로 분노의 대상과 관련하여 시기별 구분을 통해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우리나라를 넘어 국제적인 차원에서 언급된 분노가 눈에 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한 내용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양상은 이와 달랐다. 내용적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관련된 ‘월가’에 대한 분노나 2011년 자본의 폭력과 ‘무관심’에 대한 경종을 울리며 전 세계적으로 분노 신드롬을 가져왔던 스테판 에셀의 저서인 ‘분노하라’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자스민혁명’으로 촉발된 이슬람 지역에서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정치적 탄압도 분노의 대상으로 많이 언급되었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분노는, 우리 모두가 예상하듯이 세월호 참사와 연관되어 있다. 세월호 참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아이들, 유족들, 청와대 등이 함께 나타나고 있고, 장기화된 청년실업의 문제로 인해 다른 시기에는 나타나지 않던 ‘청년들’ 또한 도출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는 다른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기간을 살펴 볼 수 밖에 없었지만, 북한의 도발과 관련하여 주요 이해 관계자가 모두 등장하고 있고, 최근 학교폭력의 문제와 함께 학부형들의 분노 또한 크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분노를 감정적 소모가 아닌 발전을 위한 에너지로

지금까지 살펴 본 분노의 원인 중에는 해결 가능한 것도 있고, 우리로써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도 존재한다. 개인이 관리하고 조절이 필요한 분노가 아니라, 적어도 ‘공분’의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사안이라면 분노의 근원에 대한 파악과 함께 해결을 위한 관심과 지혜가 보다 적극적으로 모아져야 한다. 다양한 층위에서, 이를 위해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발생하는 분노를 일시적인 감정 속에서 소모하는 것이 아닌 ‘좋은 사회’를 위한 건강한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채널과 공간의 마련이 필요하다. 행복한 개인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말이다.

배영(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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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출처: 1990년 1월 1일부터 2017년 9월 13일까지를 분석대상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아카이브 분석시스템인 빅카인즈 서비스(www.kinds.or.kr)에서 추출함. 뉴스기사건수는 빅카인즈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전체 44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했고, 키워드 추출은 해당 기간 한국일보 기사만을 대상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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