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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불법천막 치우다 검찰 불려가는데 누가 손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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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불법천막'에 피소 이후… 공무원들, 법 집행에 몸 사려]

- 서울 불법시설물 제거 작업 올스톱

전노련, 3개월째 용산 人道 차지… 주민 "치워달라" 해도 구청 침묵

강력 대응 종로구청 관내엔 '0'

불법천막, 단속 약한데로 옮겨가

"검찰에서 어떤 걸 묻던가요?"

서울 종로구청의 한 공무원은 최근 이런 내용의 전화를 다른 구청 공무원으로부터 자주 받고 있다. 이 공무원은 지난 6월부터 서울 도심에 민노총 등이 설치한 불법 천막을 철거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다 지난달 31일 검찰에 불려갔다.

민노총이 지난 7월 종로구청 직원과 경찰 등 6명을 직권 남용 혐의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종로구청 공무원들이 검찰 조사를 받은 후 서울에서 불법 천막 철거는 완전히 중단됐다. 담당 공무원 사이에 "불법 천막 잘못 건드렸다가는 고소 당해서 검찰에 불려간다"는 이야기가 퍼진 것이다.

조선일보

15일 오후 서울 용산 전자상가 인근 인도(人道) 위에 설치된 불법 천막의 모습. 전국노점상연합은 지난 6월 25일부터 인도 위에 대형 천막 2개를 세우고 노점상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농성을 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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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청 건설관리과 직원은 "누가 나서겠나. 그냥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공직 사회에 '공권력 무력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사이, 도로를 무단 점거한 불법 천막은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 조사 후 불법 천막 방치하는 구청

지난 14일 오후 서울 용산 전자상가 인근. 10월 초 완공 예정인 '서울 드래곤시티호텔' 공사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사장 바로 앞 폭 5m 인도(人道)를 천막 2개가 점거하고 있었다. 그 주변엔 '면세점·호텔 짓겠다고 노점상 싹쓸이' '노점 생존권 보장하라'고 적힌 현수막 2개와 입간판 여러 개가 있었다. 전국노점상연합(전노련)이 지난 6월부터 전자상가 일대 개발로 쫓겨난 노점상들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불법으로 세운 것이다. 도로법(74·75조)에 따라 지자체 허가 없이 인도나 차도에 설치한 천막은 모두 불법이다.

전노련은 호텔 측의 요청으로 15일 인도를 점거한 천막과 돗자리 일부를 자진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구청의 적극적인 개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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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민들은 구청에 지속적으로 천막 철거를 요구해 왔다. "호텔이 문을 열면 가뜩이나 도로가 복잡해질 텐데, 불법 천막까지 방치할 순 없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민원은 쏟아지는데 천막 철거는 엄두내기 힘들다. 종로구청 직원들이 검찰 조사받은 걸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앞에는 유성기업 노조가 현대차에 항의하며 세운 천막이 하나 있다. 18개월째 그 자리에 서 있다. 현대차 사원들 사이에서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대차 사원 김모(27)씨는 "유성기업 노조의 행태는 도가 지나치다. 업무하는 공간에다 불법 천막을 치는 것도 모자라 장송곡을 틀고 상여를 메고 돌아다니는 게 정상적 집회 시위는 아니지 않으냐. 구청이 단속해야 한다"고 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법대로 강제 철거하자니 부담스러운데, 외면할 수도 없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단속 약한 곳에 불법 집중되는 현실

불법은 공권력이 약한 곳을 노린다. 종로구청은 불법 천막에 강력히 대응해 왔다. 지난 8월 5일 서울 종로구청이 구청과 용역 업체 직원 등 40여 명을 동원해서 민노총 등이 정부서울청사 앞 등에 설치한 불법 천막 5개를 강제 철거하고, 남아 있던 천막 11개에 대해서도 경고장을 보내 자진 철거를 유도했다. 당시 일부 조합원들이 철거 인력과 몸싸움을 벌이자 경찰은 철거를 방해한 혐의(공무 집행 방해)로 2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현재 종로구청 관내에는 불법 천막이 없다.

민노총 등은 최근 정부서울청사 앞 불법 천막을 약 200m떨어진 서울 세종로공원으로 옮겼다. 종로구청 관할인 인도롤 피해, 서울시 관할 공원으로 자리를 바꾼 것이다. 세종로공원은 광장으로 분류돼 장소 사용 허가를 미리 받아야 한다. 서울시는 '공원 내 불법 천막 8개에 대해 지난 11일까지 철거를 해달라'며 2차 경고를 보냈다. 그런데도 민노총은 기한을 넘기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아직 철거 계획은 세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의 한 일선 공무원은 "'떼법'이 갑이다. 이미 공권력 경시는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했다.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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