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부산 개성중 다니던 아들
동급생에 맞아 폐 3분의 2 파열돼
당시 가해자 “살인도 경험” 글 파문
충격으로 뇌경색 수술 받은 아버지
최근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언급
“학폭은 비극, 고통의 사슬 끊어야”
12일 부산역 앞 카페에서 만난 홍씨는 부산 여중생 사건 등 최근 곳곳에서 일어난 청소년 폭행 사건에 대해 “이젠 정말 달라질 때도 됐는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2005년 10월 1일 성인이는 학교에서 ‘짱’이라고 불리던 같은 반 친구 최모군으로부터 교실에서 폭행을 당했다. ‘딱밤 때리기’ 장난을 하다가 성인이가 욕설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주먹과 발 그리고 의자에 맞은 성인이는 폐의 3분의 2가 파열됐고, 머릿속에 피가 고였다. 성인이는 그 뒤 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이 사건은 ‘개성중 폭행치사 사건’으로 불렸다. 가해자 최군이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에 “살인도 좋은 경험^^ 덕분에 인간은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어~ 어차피 난 법적으론 살인이 아니니~ㅋ” “개만도 못한 것들이 짖어대?” 등의 글을 올려 공분을 샀다.
홍씨는 그러나 아들 사망에 대해 최군보다는 교육 당국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개인적인 심정이야 최군을 감옥 보내고 싶었지만 우리 아이가 불쌍하듯, 어찌 보면 그 아이도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산구치소에 수감된 최군을 위해 홍씨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형사합의서를 써줬다. 최군의 가족이 보석 신청을 하자 재판부는 미성년자인 점과 합의가 이뤄진 것을 고려해 석방 결정을 내렸다.
그해 12월 2일 부산지법은 선고공판에서 가정지원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렸다. 형사처벌을 면한 최군은 소년법상의 보호처분을 받고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다. 홍씨는 “최군이 이후 명문대 의대에 진학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최군을 악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치기에 한 일이라고 사과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홍씨는 부산시교육청을 상대로 아들 사망의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 2심과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교육 관여자에게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뚜렷한 과실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홍권식씨는 2007년 2월 아들 성인군의 영정 사진을 들고 개성중 졸업식에 갔다. [사진 홍권식씨] |
홍씨는 2007년 2월 개성중 졸업식에 갔다. 학교장에게 “아들 납골당에 졸업장만이라도 갖다 주고 싶다”고 요청한 뒤였다. 그는 “그날 하염없이 기다렸다. 아들의 이름이 불릴 줄 알았다. 그러나 끝내 성인이는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졸업식 이후 ‘더 이상 아들을 붙들고 있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성인이가 나온 사진을 모두 불태웠다. 납골당에 가면 성인이 친구들이 아직도 찾아와 메모를 남기곤 하는데 최근에 ‘성인아, 내가 매년 기일마다 왔다 간다. 이번에 캐나다로 연수 가서 내년에는 못 온다. 미안하다’는 메모가 있었다. 그 친구가 성인이와 찍은 사진 뒤에 써놓은 메모였는데 그 사진도 불태웠다”고 말했다.
최근 각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소년범 처벌 강화 주장에 대해 홍씨는 “처벌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얘기보다 여전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폭력 자체를 예방하기 위한 얘기를 먼저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비극이다. 피해자, 나 같은 2차 피해자가 수십 년째 나오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 고통의 사슬을 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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