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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인데…어떻게 일군 영화 산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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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유선희 기자의 영화판]

박근혜 정부가 쌓은 적폐청산에 몸살 앓는 영화계

광주· 노무현 전 대통령 소재 영화 등에 관객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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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인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했다는 말입니다. 김 장관이 지난 7일 박 전 대통령 공판에 나와 증언을 하면서 알려졌는데요. 이 말은 ‘영화계 블랙리스트’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박 전 대통령은 ‘좌파 영화나 만드는 영화인들이 아버지가 애써 일궈놓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겠죠. 그 결과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이 영화에 스크린을 내준 예술영화관들이 차례로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에서 탈락했던 겁니다. ‘세월호 시국선언’ 등에 참여한 문화예술인 9473명이 ‘검열 명단’에 오른 것도, <변호인>과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만든 씨제이이앤엠이 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것도 다 ‘아버지의 나라에 누를 끼쳤기 때문’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런 ‘불순한 영화’ 대신 “건전 콘텐츠를 활성화하라”고 지시했다죠.

기나긴 재판을 받는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수족들은 요즘 심기가 불편할 듯합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불순한 영화’가 쏟아져나오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대중은 이런 영화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입니다>는 185만명을 동원하며 올해 다큐 1위 흥행작에 올랐고, 광주 5·18을 다룬 <택시운전사>는 천만 영화에 등극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을 비판한 <공범자들>도 22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습니다. 쌍용차 대량 해고 사태를 다룬 <안녕, 히어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 추적기 <저수지게임> 등도 관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 1일 영진위가 공고한 올해 독립다큐 제작지원사업 심사 결과, 2012년 대선 조작 사건을 다룬 <더 블랙>과 <기술자들>,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을 다룬 <지록위마> 등이 선정됐다니 그의 심기 불편은 당분간 이어질 듯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국민과 영화인들의 심기는 더 어지럽습니다. 그들이 쌓아놓은 ‘적폐’를 청산하느라 영화계가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죠. 영진위원과 영진위원장 공백 사태가 길어지며 한국 영화 진흥사업이 갈 길을 잃고 있습니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지난달 29일 성명을 내어 “지난 정부의 정책 방향과 다르지 않은 ‘2017년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부산시장 사과와 영화제 독립성”을 요구하며 올해도 부산영화제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진 나라인데, 어떻게 일군 영화산업인데….”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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