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작가 도움 없이 직접 집필
아들병역 등 ‘3대 의혹’ 해명
‘3김 정치’ 평가 논란 가능성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앞줄 오른쪽)가 2012년 11월27일 오전 대전역 광장에서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앞줄 왼쪽)와 인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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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탄핵 사태의 주된 책임자는 누구인가? 바로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15~17대 대선에 연거푸 출마했지만 고배를 들어야 했던 이회창(82) 전 자유선진당 총재가 1040쪽에 달하는 <이회창 회고록>(김영사, 1·2권)을 출간했다. 대법관·감사원장을 거쳐 국무총리, 한나라당 총재와 대선 후보로 20여년 보수정치의 중심에서 살아온 그는 “(탄핵 사태와 분당에 대해) 한나라당을 창당했던 나로서는 침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번 사태가 보수주의의 책임인 것처럼 야당이나 일부 시민세력이 보수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말로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사람은 보수주의의 가치에 배반한 행동을 한 정치인들이지 보수주의가 아니다”(2권 101쪽)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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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총재는 전문 작가의 도움 없이 직접 연필을 들고 회고록을 쓴 이유로 “살아온 과정을 보고할 의무”와 함께 “대선 패자가 되면서 승자의 역사만 남았다. 뒷날의 공평한 평가를 위해 야당의 역사를 제대로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들었다. 이 전 총재는 특히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득표율 1.53%포인트, 2002년 16대 대선에선 노무현 후보에게 2.33%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던 이유에 대해 ‘왜 졌는가’라는 별도의 장을 따로 쓰는 등 깊은 회한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대선 패배의 주요 원인이 됐던 최규선 20만 달러 수수 의혹, 기양건설 10억원 수수 의혹, 김대업 병역비리 의혹 등 이른바 ‘이회창 3대 의혹 사건’에 대한 억울함과 해명을 담았다.
대법관 임기를 1년여 남겨둔 1993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감사원장으로 발탁된 과정, 다시 국무총리에 임명됐지만 와이에스(YS)와의 ‘충돌’로 ‘대쪽’ 이미지를 쌓으며 이후 한나라당 창당과 대선 후보로 나서는 과정 등이 패자인 ‘야당 총재’의 시각에서 쓰여져 한국 현대정치사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김대중·김영삼·김종필 ‘3김 정치’를 다룬 부분은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로부터 객관성 여부와 평가를 두고 정치적 논란도 예상된다.
이 전 총재의 이흥주 특보는 2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초 본인은 회고록을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 전 총재가 왜 정치를 했고, 어떤 정치를 하려 했으며, 어째서 실현되지 못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국가 발전이나 이 시대의 정치 상황을 후학들이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변의 권유로 쓰게 됐다”고 했다.
출판사 쪽은 2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1층 예인홀)에서 이 전 총재의 회고록 출판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연다. 이 전 총재 쪽은 “출판기념회와 같은 정치행사가 아니다. 출판사의 출간 설명회에 저자가 빠지면 안 된다고 해서 참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이회창 키드’로 불리는 현직 정치인들을 따로 초청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신경식 전 의원, 이정락·안동일 변호사 등 후원회 인사 등이 참석한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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